메리 벨 (Marry Bell)


메리 벨 (Marry Bell)

  1. 악녀의 씨앗. 메리 벨.

누구나가 미성년을 잔혹한 행위로 살해하고 이것을 즐기는 정신병자라면 손가락질하고 질타하고 경명하고 증오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범인이 고작 열한 살의 꼬마이며 더구나 똘망똘망한 파란 큰 눈과 앵두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예쁘장한 소녀라면... 우리는 적잖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1968년 여름, 영국에선 실제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

메리 벨 (Marry Bell)은 1957년 05월 26일 영국의 매춘부였던 어머니와 범법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들 영화 <나쁜 씨앗>을 아는지 궁금하다. 영화 <나쁜 씨앗>은 메리 벨의 이야기를 본 떠 만든 영화로 나름 유명한 영화인데,

영화는 길게 머리를 땋아내린 예쁘장한 소녀가 깜찍한 외모 속에 사이코패스의 광기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으로 영화의 소녀는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하며 헌신적인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라면 현실의 메리 벨은 그와는 반대의 후천적 사이코패스로 성장했다.

메리 플로라 벨, 그녀는 2세 때부터 이미 정서가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경향을 나타냈으며 4세 때부터는 만성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주변으로부터 "늑대 소녀"라는 평판을 받는가 하면 꾸중을 들어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다 다른 아이들의 목을 조르다 발각되 꾸중을 들으면 사과나 반성은 커녕 정색하는 등의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나타냈다고 한다.


실제로 1957년 5월 26일 영국 뉴캐슬 어폰 타인 매춘부였던 베티는 자신의

첫 아이인 메리 플로라 벨이 태어나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Take that thing away from me!" - 그것 좀 내게서 치워줘!

메리 벨의 창녀였던 어머니 베티는 정상적인 부모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에게 애정이 없었는데, 메리가 태어난 후 2년여간 그녀를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업씬 여기고 괴롭히기 일쑤였고 자신의 딸이 오줌을 쌀 때마다 모욕을 주곤했는데 변기에 고인 오줌으로 딸의 얼굴을 세수시키거나 이웃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오줌으로 얼룩진 메트리스를 집 밖에 전시를 해놓기도 하고 어린 딸 앞에서 낯선 남자와의 성관계 맺는 것을 즐겼으며, 아이가 4살 되던 해부터는 메리를 매춘의 대상으로 이용해 남자들이 딸을 좀 더 편하게 성폭행할 수 있도록 팔과 다리를 잡아주곤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 아버지는 알려진 바는 없지만 베티가 메리를 낳고 얼마 있지 않아 결혼한 상대인 빌리 벨은 이미 다수의 전과를 가진 누범자로 나중에 무장간도 혐의로 체포된다. 이는 친척들의 여러 증언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FBI가 내린 연쇄살인범에 대한 정의 따르면 메리 벨은 연쇄살인범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징후를 나타내는데 동물을 학대한다든지, 나이가 든 후에도 침대에 오줌을 싼다든지, 좀도둑질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쇄살인범으로 분류되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피해자의 숫자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를 초기에 잡지 못했다면 계속 살인을 저질러 연쇄살인범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은 거의 확실시 되고있다고 한다.

영국 북부의 경제적으로 침체가 심했던 음울한 공업도시 스코츠우드에서 메리 벨과 친구 노마는 1968년 5월 11일, 24시간동안 아이들 네 명을 공격했다. 범행 10일 후인 5월 25일 세 살 난 마틴 브라운의 시체가 폐가에서 발견된다.


<마틴 브라운이 발견된 폐가>

아기의 입가에는 침과 피 거품이 부글거리고 있었는데 이를 맨 처음 알린 사람은 바로 메리 벨이었다.


<첫 피해자 마틴 브라운>

두 아이(메리와 노마)는 피해자 마틴 브라운의 이모를 찾아가

"폐가에서 사건이 일어났어요. 피해자는 아마도 마틴같아 보여요! 저희가 안내해드리죠."

라며 사건의 현장까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당시의 신문기사>

이도 경악할 노릇인데 이 대담한 두 소녀는 이튿날 마틴의 이모를 찾아가 마틴을 보러왔노라고 말한다. 이에 그의 이모는 마틴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 아이에게 침통한 얼굴로 아이의 죽음을 다시 이야기하며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마틴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틴이 그립죠?, 마틴때문에 울었나요?" 등등의 질문을 쏟아냈고 그녀의 침통한 마음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메리는 뭔가 신이 난 듯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웃으며 말했다.

"Oh, I know he's dead, i wanted see him in his coffin"

-사실 마틴이 죽었다는 건 저도 알아요. 전 마틴이 관 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러 온 거에요.

이에 그녀는 메리와 노마를 현관밖으로 내쫓고는 두 번 다시 오지말라고 했다.

시신의 입에서는 피와 거품이 엉켜번져있었고 뺨과 턱에는 태량의 타액이 묻어있으며 곁에는 하늘색의 아스피린 병이 있는 점과 외상이 없는 것을 근거로 경찰은 마틴의 실수로 대량의 약을 복용해 사고사 당한 것으로 단정짓는다.

1968년 5월 26일 메리의 11번째 생일, 메리는 노마 벨의 여동생을 목 조르던 중 노마의 부친에게 그 모습을 발각당하는데 이에 봅시 화가 나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침입해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고 낙서를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27일 월요일 아침, 출근한 교사는 엉망인 학교와 쪽지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이를 단지 질 나쁜 장난으로 치부해버렸다.


"I murder so THAT I may come back" - 나는 살인자다. 살인하기 위해 다시 오겠다.


"tuch of we murder watch out Fammy and Faggot." - 우리는 살인자다 패니와 패곳(패니:여성의 성기/패곳: 싫은녀석,동성애자,겁쟁이)를 조심해라.


"We did murder Martain brown Fuck of you Bastard." - 우리가 마틴브라운을 죽였다. 엿먹어라 개자식들.


"You are micey Becurse we maudered Martain Go Brown you Bete Look out THERE are Murders about By FANNYAND and auld

Faggot you Srcews". - 쥐떼들아, 우리가 마틴브라운을 죽였다. 조심해라 패니와 패곳이 너의 창녀들을 상대로 살인사건이 있을거다.

또 같은 날 메리 벨은 자신의 공책에 다음과 같은 그림과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30일 학교 모래밭 근처에서 메리가 노마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메리는 노마를 할퀴고 발로 눈을 걷어차며 마틴이 죽은 채 발견된 집 쪽을 가리키며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고 한다.

"I am a Murderer!" - 난 살인자야!

다음 날인 7월 31일 브라이언 호(당시 3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던 브라이언의 누나에게 메리는 다가와 "브라이언을 찾니?"라고 물었다.


메리와 함께 있던 노마와 함께 브라이언을 찾는데 동참했으며 둘은 마치 브라이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양 브라이언의 누나를 이끌었고 곧이어 한 커다란 콘크리트 블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브라이언은 아마 저 블럭 뒤에서 놀고 있을지 몰라!"

하지만 노마는 이를 강하게 부정하는데 "아냐! 브라이언은 절대 거기 가지 않았어!" 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메리는 브라이언의 누나가 죽은 브라이언을 발견하길 원했는데 웃날 노마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리는 브라이언의 누나가 브라이언을 발견하곤 충격을 받는 것을 더 즐겼습니다."

한편 브라이언의 누나는 콘크리트 블럭 근처를 찾지 않았고 이후 브라이언을 찾아 나선 뉴캐슬 경찰에 의해 밤 11시 10분 경 시신이 발견됐다.


아이는 목이 졸려 죽어있었고 시신의 곁에는 부러진 가위가 놓여있었다.


아이의 허벅지에는 깊게 짤린 상처가 몇 군데 있었고 성기는 껍질 일부가 벗겨져있었다. 뭉텅이로 잘려나간 머리칼 사이로 아이의 배 위에 깊이 베인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의 배에는 면도칼로 "M"자가 각인되어있었다. 처음에는 "N" 이라고 새겼다가 후에 덧대서 M으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매칠 후 경찰은 브라이언의 사인인 질식사에서 발견된 약한 압흔 등을 들어 범인은 어른이 아닌 아이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하고 대대적인 탐문 수사를 벌인다. 그 결과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이 두명 등장한다. 그게 바로 메리 벨과 노마 벨이었는데 두 아이는 경찰의 질문에 답하기를 회피하거나 히죽히죽 거듭하여 웃으며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등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의 수사관은 "마치 그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농담인 양 계속 웃었다" 라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8월 7일 브라이언의 장례식이 거행되는데 장례식에 참여했던 당시의 수사관 돕슨 경위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메리 벨은 브라이언의 관이 들려 나올 때 집 앞에 서있었다. 나는 물론 그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서서히 웃기 시작했고 손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오, 하느님. 저 아이를 잡아들여야해. 안 그러면 또 죽일거야."

좁혀진 수사망으로 경찰은 메리와 노마를 각각 서로 다른 곳에서 취조했는데 두 아이의 진술은 서로 엇갈렸으며 이후 수사가 메리에게 좁혀지자 메리는 사건 당일 근처의 여덟 살 난 소년이 은색의 가위를 들고 브라이언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는 증건을 하지만 사건 당일 그 소년은 공항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밝혀지며 메리가 경찰이 메스컴에 공개하지 않은 흉기인 "가위"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을 미루어 그녀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데 이때 노마 또한 메리가 브라이언을 죽였다고 진술하기에 이른다.

메리의 증언에서 모순의 발언, 혹은 거짓말을 유도해내기 위해 돕슨 경위는 일부러 없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메리, 네가 브라이언의 살인현장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단다. 어떤 남자가 브라이언이 누워있던 잔디 근처에서 너희 둘을 보았다는 거야. 아마 그 남자는 널 알아볼 수 있을거다." 라고 하자 메리는 비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시력이 무척 좋아야만할걸요."

"왜 그렇지?"

"왜냐면 그 아저씨는 제가 그 곳에 없었는데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요."

대답을 끝낸 메리는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집에 갈래요. 이건 세뇌교육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경찰에게 귀가를 저지당하자 다시 앉으며 물었다.

"혹시 여기 도청도 되는 건가요?"

그리고 그날 메리는 자백을 거부하며 말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을래요. 이미 충분히 했잖아요. 형사님은 저만 노리고 있어요. 노마는 거짓말쟁이인데! 그 애는 절 골탕먹이려 드는거라구요! 전 새 한마리도 목 졸라 죽이지 못하는 애라구요. 무섭잖아요!"

결국 그 날 새벽 메리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돕슨 경위는 포기하지 않았고 노마로부터 추가 진술을 확보하며 메리를 다시 경찰서로 소환한다. 그리고 자신이 브라이언이 죽을 때 현장에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녀의 자백은 사건의 진상과는 묘하게 어긋나있었다.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브라이언을 유도하고 살해한 사람은 자신이 아닌 노마였다. 자신은 옆에서 노마가 브라이언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그녀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노마를 도왔을 뿐 살인자는 노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니에요. 당신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해주겠어요!"

그리고 두 소녀는 뉴캐슬 경찰서에 나란히 수감되었는데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메리에 대한 정신 감정이 실시된다. 당시 그녀의 정신 상태를 처음으로 진단한 오튼(Orton)박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아동 정신병 환자들을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메리와 같은 아이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똑똑하고, 교활하며 위험합니다. 그녀는 어떠한 일에도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울거나 불안해 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도 어떠한 감정적 동요를 느끼지 않으며 단지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상황을 불평할 뿐입니다. 저는 그녀가 범죄를 저지른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메리는 구류 중에 여성 간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 좋아."

"간호가 되고 싶어요. 바늘로 사람을 찌를 수 있잖아요."

"브라이언의 집엔 엄마가 없어서 브라이언이 없어도 아무도 외롭다고 생각지 않을거에요"

메리는 법정에서 동정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그녀는 똑똑하고 교활하며 간사한 소녀였지만 동정심을 얻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시종일관 차분하지만 분노에 찬 눈동자로 모든 사람을 응시해고 재판 도중 경관에게 "방청석의 여자 한명이 저를 보며 미소지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이건 웃을 일이 아니잖아요?" 등등의 열한 살의 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냉정함과 차분함으로 일관했다.

반면 노아는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데 성공한다. 넉넉치 않은 형편의 11명의 자녀 중 셋째였고, 재판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증거와 진술에 대해 불안과 공포, 그리고 눈물이 뒤섞인(메리는 울음은 연약함의 표출이라며 경멸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며 거듭해서 메리의 잔악성과 폭력성을 강조하고 이 모든 일은 그녀의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의 일부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재판 6일이 되던 날 메리는 증언대에 오른다. 증언대에 오르기 전, 메리는 여성 경관에게 '미성숙'이란 단어의 뜻을 물었다.

"변호사가 노마 쪽이 더 미성숙하다고 했어요. 그 말은 제가 더 똑똑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는 뜻인가요?

증언다에 오른 메리는 침착했고 매우 논리적이었다. 왜 마틴이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싶어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노마와 전 내기 중이었고 저는 겁쟁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메리는 갑자기 노마가 함께 도망치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는데 왜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노마는 어린 아이들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요. 그게 이유죠. 그래서 경찰을 피해 도망치려는 거였어요. 더 많은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서."

재판에 막바지에 검찰은 메리를 "악마 같은 아이"로 규정했고 노마는 "사악한 지배자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의한 피해자"로 결론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메리는 극도로 비정상적인 아이로써 공격적이고, 사악하고, 잔인하여 양심의 가책을 모르며 어딘지 비정상적인 지능과 공포스러울 만큼의 교활한 성격의 소녀이다. 다만 노마는 평균 이하의 지능을 지닌 모자란 소녀로, 메리의 악마적 지배력에 압도당한 희생야일 뿐이다."

배심원단은 4시간에 걸쳐 평결을 내렸는데 두 건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노마는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고 메리는 "한정책임능력에 따른 과실치사"(타인에 대한 적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결과에 대한 고민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에 따라 정신병적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로 간주되어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어린 아이인 메리의 유죄판결을 마음 아파하거나, 그녀를 위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유유히 재판장을 빠져나갔는데 훗날 베티 벨은 자신의 딸의 사악한 유명세를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타블로이드 신문에 팔아 돈을 벌기도 했고 언론에 유포가 용이하도록 편지나 시를 자주 쓰라고 딸에게 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죄 판결이 결정된 직 후 인터뷰에서 왜 그런 나쁜 행동을 했냐는 질문에 메리는 혀를 내두를 만한 대답을 한다.

"Murer Isn't That Bad. We All Die Sometime Anyway." - 살인이 뭐 그리 나쁜가요. 어차피 다 죽을텐데요.


메리는 결국 소년원으로 보내는데 이 곳은 소년 전용 수용시설이다. 시설에 보내진 2년이 채 되지도 전에 그녀는 선생을 성폭행 범으로 고발했다. 이 후 그녀는 감으로 보내졌는데, 그 곳에서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밝히고 스타킹을 말아 팬티 가랑이에 쑤셔넣은 채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977년 감시가 덜한 시설로 옮겨진 뒤에는 동료 죄수 2명과 함께 즉시 탈출을 감행했다. 탈옥한 사이 젊은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는데, 이때 메리는 탈옥 사건과 관련해 타블로이드지에 다음과 같이 맑했다.

"내가 정상적인 것과 일반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더구나 그녀의 탈옥은 고작 3일이었는데 그녀가 3일 후 체포된 후 메리와 성관계를 맺었던 남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타블로이드 신문에 팔아넘겼다. 1980년 그녀는 가석방을 앞둔 때에 중간 보호소로 옮겨졌는데 이 곳에서 어떤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했고 바로 낙태시켰다.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이유였다.


그 후 1980년 4월 22세가 된 메리는 12년간의 복역 끝에 가석방되어 일자리를 전전하기도 하고 대학에도 다니지만 곧바로 그만두고 모친에게 돌아가는데 이 즈음 젊은 남성과 교제해 임신한 후 1984년 여자아이를 출산했는데 1992년까지 재판소의 감독하에 있어도 육아가 허가되어 아이를 키우지만, 다른 남성과 교제하며 작은 마을로 옮겼을 때 그녀의 정체가 주위에 알려져 마을을 떠나라는 데모가 생기기도 했다.


1998년 살인을 회고하고 삶을 돌이켜보며 평범한 인생을 살고자 갈망하는 자서전적 도서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Cries Ungeared)"가 지타 세리니를 통해 발간되면서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범죄자인 그녀가 자신의 범법 행위를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해도 좋은 지를 두고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고 그녀가 책의 판매로 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에 영국 사회는 분노했으며 이를 투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공개적으로 그녀의 행위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른 범죄자들은 이 후로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법률이 재정되었다.


책의 출간이 논란거리로 대두되자 상처입는 것은 메리 벨의 아이였다.

1968년 두 아이를 살해한 메리 벨은 십대였던 자신의 딸을 사진에 찍히지 않게 하기 위해 침대보를 상비해야 했으며, 딸이 18세가 될 때까지 익명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을 2003년 5월 21일 법원에 자신과 딸에 대해 사생활 보호를 연장해 줄 것을 청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 후, 아동살해범 메리 벨은 여생동안 익명성을 보장받게 되고 더 나아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앞으로 메리와 그 딸의 신원은 외부인으로부터 철저한 비밀로 보장받았고 그녀의 신분과 주거지는 국가 기밀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이 유명한 법적 판결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살인범 및 중죄인의 신변 보호하는 제도를 "메리 벨 오더"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악마의 자궁에서 태어나 악마의 소굴에서 악마로 길들여진 메리 프롤라 벨.. 그녀 안의 괴물은 과연 누가 키운 것일까?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단 한번의 살인소동없이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던 그녀는 정말 피에 흥분하고 살인에 갈증을 느끼는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같이 대두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조금, 아주 조금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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