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2일의 기록│부처님은 오셨고,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오셨고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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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2일 일요일│@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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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linjane, 2019





 일요일 낮 12시에 잡힌 면접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이 되니 긴장감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린다. 전공도 아니고 오로지 취미로만 해왔던 사진이다. 질문이 들어오면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깜깜하다. 어제 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OST 음반을 틀어 놓고 있다. 불안감을 달래려 명상 때 배운 아나빠나 호흡을 시도해본다. 완전히 긴장감을 잊을 순 없을 거다. 내 인생과 사진 사이에 놓인 여러 가지 일을 마음속에 떠올리면서 즉석으로 대답을 떠올릴 재료를 만들어본다. 오전 11시 20분이 되어 집을 나선다. 스튜디오와 우리 집은 같은 동네에 있지만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다. 버스를 타고 근처까지 가도 15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교통편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말에 일하고 평일날 쉬어야하지만 그것도 아무 문제없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을 하자'는 생각뿐이다.



 근처에 큰 절이 있는데 거리에 차들도 사람들도 많다. 부처님 오신 날이 오늘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눈 앞에서 펄럭이는 현수막에 해답이 적혀 있다. 부처님께서 오늘 탄생하셨구나. 문득 아기 예수처럼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건지, 깨달음을 얻은 날을 탄신일로 삼는 건지 궁금해진다. 눈 앞에 스튜디오 건물이 보인다. 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운명의 시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오까지 10분 정도 남았지만 주위에 앉아있을 만한 곳이 없어서 들어가기로 한다.



 주말에 사진을 찍으러 온 고객들로 붐빈다.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직원들이 밝게 인사를 건넨다. 조심스레 면접을 보러 왔다고 전한다. 생각보다 직원도 많고 규모가 큰 스튜디오라서 놀랐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촬영이 진행 중인 공간과 의상실을 흘끔 들여다보고 사진 상품을 소개한 안내문을 읽는다. 가방에 넣어 온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으려다가 덮는다. 어디 카페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면접을 보러 온 것이니 선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스튜디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던 대표님으로 보이는 분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구나.



 이 업계에서 10년이 넘게 사업을 운영하시는 분답게 깐깐하면서도 부드럽고 명료하게 말씀을 이어가신다. 이력서에 적었던 사진 관련 일들, 사진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어디까지 지식이 있는지, 교육 쪽에서 일을 하다가 어떻게 이쪽으로 일을 다시 시작해보려 하는지, 이곳의 근무 시간과 업무들, 사내 규칙, 사진 예술과 노동으로서의 스튜디오 업무에 대한 간극 등 업무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면접 중 중요한 사항을 A4 이면지에 기록하시면서 말씀해주셔서 나도 파악이 훨씬 쉽다. 월급을 얼마 정도 생각하고 있는지 내 의견을 말하자 더욱 상세한 내역을 알려주신다. (회사 업무에 관한 내용이라 이곳에 옮겨 적지는 않겠다.)



 그렇게 다가오는 수요일부터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첫 달 동안 수습 기간이다. 눈치껏 움직이고 뻘쭘함을 삼키고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고 일을 몸으로 배워야 할 시간. 면접 때에도 말했지만 과거보다는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교육업에 종사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갈 수도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나는 글과 사진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껏 사진을 취미로 찍어 왔지만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일을 하며 허공이 아닌 현실의 노동 감각을 익히고 싶다. 간절한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면접을 보고 오는 길에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목도 축일 겸 들어갔는데 마침 사진책과 사진 이론에 관한 책으로 서가 한쪽이 빽빽이 들어찬 곳이다.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사진 책으로 영감을 얻고 길을 나선다. 집에 돌아온 뒤로 한 번도 푹 잘 수 없어서 아직도 여독이 느껴진다. 첫 출근까지 남은 이틀이라도 푹 쉬어야겠다.●




│by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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