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2편

어린시절 나의 전공은 S/W 였다. 대학교때는 H/W 였으며, 대학원때는 communication 및 radar였고, 창업을 시작 하면서는 경영학이 되었으며, 창업 후에는 기획을, UX를, 그리고 현재는 product design을 맡고 있다.

이글은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의 속편으로 이전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확인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1편



전공2. 하드웨어(계속)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독립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맛보기에는 20살의 나이는 충분했었을까?

흔히 대학생활의 꽃은 동아리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이런말 하면 노땅취급 당하겠지만 2002년인 그때 까지만 해도 그랬다.) 요즘은 취업 준비등으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당시에는 뭐 그랬다. 사실 필자가 H/W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전자연구회’라는 ‘응답하라 1988’ 스러운 동아리에 들어간 계기는 필시 우연이 90%이상 이었다.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의 선택은 사소한 계기를 통해 찾아오는 듯 하다.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은건  ‘브레이드러너’라는 인라인 스케이트 동아리였다.  U자 커브의 트랙을 왔다가 갔다하며 허공에서 현란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그 모습은 ‘대학 = 자유’ 라는 메타포를 이끌어내기 충분했고, 이것이 바로 나의 대학생활의 목적이 될 것만 같았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업을 마치고 바로 동아리 방을 찾아갔었다.

동아리방 앞에서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예기치 못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어제 개강총회에서 밤새 나와 술을 마시던 톰보이 누님인데(공대에는 이런류의 누님들이 많다. 친해지면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ㅋㅋ) 자기네 동아리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자고 한다. 그렇게 커피(?)에 홀려 끌려간 곳은 다름아닌 ‘전자연구회’ 였고 훗날 나의 대학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이것 저것 참 많이 만들어 봤던 것 같은데, 로봇이란 로봇은 다 만들어 본것 같다. 한 10개쯤 되려나. 부모님께 받은 용돈과 알바비는 대부분 부품을 사는데 들어갔었더랬지. 그래서 늘 데이트 할돈도 없이 궁핍했었더랬지.


서울에서의 대학생활. 그것은 독립이라는 환경과 맞물려 나에게 과도할만큼 충분한 자유를 선물했다.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는 너무도 재미있었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대화를 안주삼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술자리. 매번 설레이던 미팅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을터. 힘들었던 고3시절에 대한 보상으로 누리기에는 충분한 댓가였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것이 ‘자유’가 아닌 미래의 목표의식 없이 떠도는 ‘방황’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딱 그때 까지였다.

이때쯤 읽기 시작한 50여권의 성공기에 답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두가지 질문을 던지기에는 충분했었다. 단순한 이 두 질문의 답은 매우 어려웠고, 그렇게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군대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군대를 갔었던건 필연적으로 완벽한 타이밍이다. 내 인생에서 질문과 답을 하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었던 것 같다. 인생의 제일 밑바닥으로 부터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과 그것들을 머리와 가슴에 새기는 과정. 그리고 그것들로 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은 오늘날의 나의 사고를 다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 나는 ‘나는 왜 사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었는데, 다행히도 군대를 제대하기 전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자.


그렇게 군대를 제대한 후 다행히도 내 삶은 급속도로 안정화 되었다. 외부 요인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이때쯤이다. 대학교 2학년, 나에게는 은사님인 한 교수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초임이셨던 교수님의 수업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서 까다롭다는 출석도, 수업운영도 아닌 학생들이 제일 관심있는 성적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자신이 정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성적은 가차 없었다.

당시 교수님의 수업은 굉장히 광범위 했다. 공학이라는 이름아래 회로이론, 전자기학, 전자회로, 논리회로 등을 모두 함께 배웠는데 호기심 많은 나에게는 크나큰 선물이었으나 다른 학생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다. 결국 나만 A+ 를 받았고 2등부터는 C+, 그리고 나머지1/3은 모두 F였으니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실 거라 믿는다. 아무튼 그렇게 받은 A+인지라 나에게는 의미있는 수업이었다.(소심하게 은근슬쩍 자랑해 봅니다.  ^____^ )

당시 나는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매번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는 모습이 나에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모습에 끌렸던 것일까?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교수님 연구실에 무턱대고 찾아가게 된다. 뜬금없이 미리 대학원 과정을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교수님게서는 흔쾌히 승락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학부연구생’이라는 타이틀 아래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공3. 통신/레이더


실제 대학원의 학업은 학부때와 많이 달랐다. 난이도 면에서 물론 상당한 차이를 보였지만 , 무엇보다 이곳은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곳이었다. 당시 나는 레이더에 관한 내용을 공부했었는데 그것의 내용을 이해하는것은 기본중에 기본일 뿐이었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단점을 개선한 새로운 형태를 고안하기 위한 질문을 해야만 했었다.

사실 레이더라는 학문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물리학, 수학, 컴퓨터공학이 결합된 형태인데 이것들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것들을 공부하다보니 학과 공부는 시시한 수준이 되어 버리긴 했었지만, 여하튼 학과 공부보다는 이런 류의 내용들을 더 많이 공부했던것 같다.

열심히 공부한 탓에 나름 성과도 많이 있었는데, 석사를 졸업할 무렵 논문 7여편, 특허 1개의 성과를 냈던 것 같다. (특허의 경우에는 졸업 이후 창업을 하면서도 계속 출원하여 현재는 어느덧 10여개가 되었다.) 미리 공부를 시작 한 탓에 남들은 박사를 마칠 때쯤 달성하게 되는 성과를 미리 이룬것 같다. 이자리를 빌어 나를 미리 받아준 교수님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드린다. 여담이지만 훗날 교수님께서는 창업시 엔젤 투자가가 기꺼이 되어 주시기도 했는데 이렇게 쌓인 도덕적 부채를 언젠가 갚을 일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지금도 열심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 대학원 생활의 원동력은 “자괴감” 이었다. 학업을 진행 할수록 수업시간에 편하게 질문하던 교수님의 배움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깨닫게 되었고, 내가 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그 자리에 올라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지속 될 수록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 보였다.

이런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방법은 노력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것이 이때쯤 이었다. 사실 이부분은 지금도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창업후 만나는 사람중에는 아직도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제는 실망하지 않는다. 이를 나 자신을 채찍질 하기 위한 촉매제로 이용할 뿐이다.

아직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이런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한번쯤은 찾아온다. 허나 실망하지 말아라. 이런 자괴감은 바로 자신을 애둘러서 포장하고 있는 포장지를 걷게 해주는 원동력이며, 그동안 스스로 자만했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 이자,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면, 조금은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노력은 기본일 테고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2주를 꼬박 날을 새가며 연구를 하던 내용이 있었다. 미팅 날짜는 다가오고 문제는 풀리지 않아 어쩔수 없이 지금까지의 내용만 우선 정리하여 미팅에 참여했었다. PPT를 띄우고 3장을 채 넘기지 않아 갑자기 교수님이 발표를 멈추셨다. 

“SG 이거 결과 나와요?”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언어로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무언가 뒤에서 나를 강하게 내리치는 느낌. 공포감은 아니었지만 손끝으로 부터 올라오는 으스스한 기운과 함께 이상하게도 온몸에 닭살이 돋던 그때.

나에게 있어 2주는 그에게는 10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과 같았다. 클라스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지식의 밀도. 그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바라보며, 내 책상위의 조그만 책꽂이가 한 없이 초라해 보였던, 바로 그 순간 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쓰다보니 전공의 다양성이 아닌 성장기가 주가 되는 느낌이네요. 전공의 다양성을 이루면서 사실 성장했으니 같은 맥락이긴 합니다. (나중에 제목을 바꿔야 할 듯 합니다. ㅎㅎ)
아무튼 조금은(?) 독특한 시절을 보낸 과거 이력에 관심을 갖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우선 계속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원 졸업도 해야하고, 현재 창업도 두번째 이니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지루해 지시면 이야기 해주세요. 짧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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