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에서 있었던 일

2018년 4월 26일 날씨 : 맑음

테이블 2개가 전부인 분식점의 오후 3시, 낡고 조그마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소리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유리창의 낡은 노란 시트지 색으로 식당을 물들였다.

-딸랑

“돈까스 하나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와 음식을 주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남자가 지금 굉장히 따분하고 지쳐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으로 보아 나의 상태 역시 그와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나의 앞 테이블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식당 안에 존재하는 모든 테이블에 주인이 생긴 셈이다. 나는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나의 공간에 파고 들어온 느낌이다. 나의 안락함에 못이 박히는 느낌. 그러나 그 역시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나는 그조차 안락함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타다닥, 타닥
그가 쉴 새 없이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두들기고 있다. 게임일수도 뉴스 검색일 수도 아니면 누군가의 대화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에게 ‘무엇을 하느냐’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음식을 기다리는 따분함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심심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나의 안락함을 다시금 파괴하려는 그의 행동에 신경이 쓰여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조차 3초를 머물지 못하고 떠나갔다.

다시금 멍하게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뉴스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기대하는 앵커의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 나왔고, 주방에서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는지 경쾌한 금속성과 함께 무언가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멍하고 안락했던 기분이 파삭하고 깨어지는 기분이다. 이제는 불쾌하다는 느낌보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양소유에서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은 나에게 충분히 깊은 충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꼬륵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면서 나의 잔뜩 굶주린 배는 사납게 울부짖었다. ‘물은 self'라고 붙은 정수기에서 가져온 시원한 냉수로는 역부족이다. 어서 음식이 나와야지만 이 사나운 맹수를 조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락함을 생각한 것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오로지 음식으로만 향해 있었다. 문득 나 스스로가 변검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을 누가 봤으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나의 앞 테이블에 앉은 손님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여전히 -타다닥 하고 있다.

드디어 주방 앞 선반에 쟁반이 놓이고 음식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경양식 돈가스, 양상추 샐러드 그리고 마카로니와 옥수수 몇 개가 놓이고 밥이 한 주걱 올라온다.

볼품없는 구성에 비해 그렇게 저렴한 가격도 아니지만 나는 유독 이곳을 자주 찾는다. 내가 다시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유난히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밥만큼은 유난히 인심이 후한 할머니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돈가스보다 넓은 지분을 차지하는 밥의 양에 나조차도 놀랄 정도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간 동네 분식집 돈가스 맛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그 맛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돈가스를 먹으며 어린 시절 그 분식집이 떠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돈가스를 미리 큼지막하게 썰어두고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는다. 입을 오므리고 음식의 맛을 조심히 감상한다. 잎에 들어와서 뭉개지는 돈가스의 식감과 나에게 굉장히 친근한 소스의 맛. 모든 게 평범하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돈가스다. 기대했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제 먹어도 너무나 평범한 경양식 돈가스다. 그래도 계속 손이 간다. 평범하지만 맛있는 평범함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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