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경단녀의 설움' 기사에서 빠져 있는 것

http://news.nate.com/view/20180217n09784

<연합뉴스 '경단녀의 설움' 통계에서 빠져 있는 것>

오늘은 언론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대응이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경력단절의 가장 큰 문제는 물론 경력단절 당사자의 인적자본의 감소와 이로 인한 평생소득의 감소일 것입니다. 또한 소득의 감소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권한의 감소로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것이 남녀 개개인의 금융자산(수시 입출식 예금과 저축성 예·적금, 현금, 주식, 펀드)의 격차로까지 이어진다는 논의는 언론상에 많이 다뤄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사에 따르면 20~30대 남녀의 금융자산 격차는 크게 나지 않지만 40대부터 격차가 2배 가량 벌어집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로 소득격차뿐만 아니라 금융자산 격차까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는 분명 흥미로운 논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경단녀의 '설움'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빠져 있는 정보가 몇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이 통계는 개개인의 자산정보에 기반해 있는 것 같은데 40대의 경우 상당수 남성과 여성은 결혼을 통해 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때의 금융자산은 보통 누구의 명의인지를 떠나 부부의 공동재산 취급을 받기 때문에 이것이 남녀 개개인의 간의 어떤 불평등 내지는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이처럼 남녀 개개인의 금융자산 정보는 예컨대 노동시장에서 남녀에게 지급되는 임금 내지 노동소득의 격차와 동일하게 해석되기에는 곤란한 지점이 있습니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실 결혼을 통해 가계를 이룬 남녀의 경우 개개인의 격차를 논하기 곤란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 곤란함은 우리가 남녀 간의 소득 격차를 논할 때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가령 가계를 이룬 남녀의 경우 이들의 소득 모두 부부의 합산소득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남녀의 불평등을 논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남편의 월급통장을 아내가 관리하고 남편의 소비지출 하나하나를 감독하는 경우가 흔했던 '가부장적' 시대상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애초에 남녀가 개개인의 독립된 경제적 주체로 분해되는 탈가부장제 사회 이후에서야 비로소 '남녀 소득격차'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두번째로 남성과 여성의 소비성향 혹은 저축성향의 차이에 대한 정보가 빠져 있습니다. 알다시피 남녀의 소득불평등과 별개로 금융자산의 형성을 추동하는 것은 개개인의 소비지출과 (이를 뒤집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저축결정입니다. 만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저축성향이 낮고 소비성향이 높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성의 금융자산 축적의 정도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과거 미혼남녀를 비교해 볼 때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대개 남성에게 가해졌습니다.

세번째로 차입성향과 부채규모가 있습니다. 금융자산의 원천은 저축 외에도 부채가 있습니다. 실제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 중 절반가량이 금융부채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 중 절반은 소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기사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부채를 통한 투자 레버리지 성향이 더 크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남성의 금융자산 자체는 여성에 비해 많아도 부채를 감안하면 남성이 보유한 순금융자산은 여성의 그것보다 큰 격차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소득->금융자산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자산에 대한 정보는 분명 남녀의 소득 불평등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그것이 예컨대 남녀의 임금격차만큼 분명한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금융자산의 축적정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소득 외에도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사에는 바로 그 요인들이 빠져 있습니다.

물론 기자는 기사의 한계상 이 모든 정보를 담기 어렵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사이지 논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항변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서 언급한 이유에서 '경단녀의 눈물'과 같은 자극적인 표제는 피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경력단절여성이 눈물을 흘리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다른 데 있을 수 있으니까요. 다시 한 번 젠더문제에 관한 저널리즘의 선정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정적인 기사표제가 아니라 더 많은 '데이터'와 '문제해결적인 사고방식'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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