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탄생> - 소화불량에 걸리다(스포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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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나면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아쉬움. 캐릭터의 문제는 아니다. 헨리 카빌은 '선의로 다가가나 끝없이 배척되는 존재'로서의 슈퍼맨을 잘 살려냈고, 벤 에플렉의 배트맨은 어둡고 진중한 배트맨을 잘 표현했다. 원더우먼은 분량은 적으나 비주얼이나 액션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원더우먼으로 변신하면 비주얼도 올라가나 렉스 루터는 찌질하지만 재미밌는 편이고, 둠스데이의 포스는 엄청났다.

그러나 허술한 구성이 캐릭터들의 매력을 다 잡아먹었다. 영화의 흐름을 기 - 승 - 전 - 결로 잡는다면, 이 영화는 기~~~~~ - 승전결 이라고 할 수 있다. 전개에 필요한 설명과 상황설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설정을 잔뜩하고 이야기하고
보니 1시간 동안 한 이야기가 동어반복이다. 그러다보니 시간부족으로 스토리는 난잡해지고 영화는 힘을 잃는다. 좋은 재료를 억지로 삼키다보니 소화불량에 걸렸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슈나이더의 장점이라고 할 액션씬조차 적다. <맨 오브 스틸>이 비슷한 액션의 무한반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면, 이번 영화는 액션 자체가 2번 빼곤 크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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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시간에 걸쳐 <맨 오브 스틸> 이후 세계가 슈퍼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설명한다.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란 명제를 두고 사람들은 논쟁을 주고받는다. 국회의 논쟁으로, 피해자의 시점으로, 배트맨의 입으로 <맨 오브 스틸>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슈퍼맨을 받아들이는지가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그 과정에서 왜 배트맨이 슈퍼맨과 대립해야하는 지도 나온다. "1%라도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의 힘은 제어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일견 일리가 있게 그려진다.

문제는 영화가 그려내는 심리 묘사가 너무 일방적이라는 것. 배트맨은 슈퍼맨을 '잠재력 있는 악'이라 규정하고 그를 막아서려 하지만, 슈퍼맨의 입장서 배트맨은 단순한 자경단원일 뿐이다. 많은 비중이 배트맨의 심리에 쏠리다보니 '왜 슈퍼맨이 배트맨과 대립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도 싸움은 붙여야 하니 '슈퍼맨의 어머니를 인질로 삼고 배트맨과의 결투를 유도한다'란 스토리를 제시했는데 배트맨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없는 게 문제. 싸워야 될 이유를 모르니 가장 핵심으로 다뤄져야할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립도 힘이 빠져버렸다. 1시간 동안 열심히 기초를 다졌는데, 반쪽만 미친듯이 다진 셈. 그 위로 건물을 지으니 좋은 건물이 지어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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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vs 슈퍼맨>은 DCEU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의 심리묘사를 넘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떡밥까지 던져줘야 하는 임무를 맡은 것. 그런데 전체 시간 중 절반이 넘게 '슈퍼맨 vs 배트맨'에 할애하다보니 다른 것들은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버린다. 렉스 루터는 어떻게 슈퍼맨과 배트맨의 정체를 눈치챈건지(원더우먼에게 사용했던 안면인식기술일 가능성이 큼), 원더우먼은 갑자기 고담시에 왜 튀어나왔는지 등 궁금한 점이 너무 많이 남는다.

졸속 진행의 가장 큰 문제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립마저 허술하게 그려졌다는 것.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저스티스리그 이야기를 해야하니,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가장 멋지게 그려져야할 이 대립마저 어이없게 진행된다. "지금은 선해도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처단해야한다"던 배트맨이 슈퍼맨을 사지에 몰아놓고도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슈퍼맨과 손을 잡는 것은 설득력이 너무 없는 것 아녀? 그렇게 슈퍼맨을 불신하던 사람이,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라는 말 하나는 철썩같이 믿고 동료가 되는 것을 보니 참...-_-; 배트맨의 트라우마를 밑밥으로 깔아놨다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세부적인 전개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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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그나마 볼만한 것은 둠스데이 등장 후의 액션씬. 둠스데이의 공격은 단순하지만 스케일과 파괴력면에서 압도
적이다. 그에 맞춰 각자의 스타일로 합을 맞추는 세 영웅도 멋지게 그려진다. 슈퍼맨이 어그로를 끌고 원더우먼이 딜을 넣고 배트맨이 응원을 하는 움직임은 상당히 빠르고 유기적이다. 솔직히 이 전투씬마저 배트맨 vs 슈퍼맨 만큼 맥빠지게 그려졌다면 정말 실망했을 듯 싶다. 그만큼 둠스데이 액션씬이 영화를 살린데 큰 공을 세운 셈. 그러나 둠스데이 같은 강력한 빌런을 이렇게 빨리 소모시켜야 한다는 것도 아쉽긴하다. 둠스데이가 마블의 타노스 급으로 강력하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를 렉스 루터의 일회용 무기로 30분만 쓰고 버리는건 좀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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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리그 시리즈라고 하기엔 저스티스리그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었고, 슈퍼맨 이야기라고 하기엔 배트맨과 원더우먼이 곁가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했다. 슈퍼맨 시리즈로 설정을 하고 "<맨 오브 스틸>의 피해를 이용해 렉스 루터가 반 슈퍼맨 여론을 조성 -> 흔들리는 슈퍼맨 -> 슈퍼맨을 끝내기 위해 둠스데이를 소환 -> 무너지는 인간 -> 슈퍼맨 해결"이라는 흐름을 폈으면 뻔하긴해도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저스티스리그는 따로 영화를 만들고 말이지. 그러나 영화는 저스티스 리그를 위해 억지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대립시켰고, 별다른 단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원더우먼을 꺼내고 아쿠아맨과 플래시를 예고했다. 심지어 아쿠아맨과 플래시는 마블의 쿠키영상마냥 한 장면만 툭 하고 던져주고 끝..

설정나열은 체계적이지만 너무 길었고, 중반 전투는 맥이 빠졌고, 후반 전투는 즐거웠으나 너무 짧았다. 가볍게 보면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슈퍼맨은 둠스데이와의 격전끝에 사망한다. 그의 사망으로 배트맨을 저스티스 리그 결성을 결심하며 영화는 종료된다. 영화시리즈의 전개를 위해 어떻게든 그를 살리겠지만, 일단 슈퍼맨이 사망한 작품이 이런 수준의 작품인 것은 너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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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놈이 적이 될 가능성이 1%라도 있으면, 우린 놈을 쓰러트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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