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결정적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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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20살때 휴학하고 선배의 권유로 벤처 기업에 들어가서 노동착취수준으로 일하고 월급도 떼여보고, 큰 꿈을 가지고 진학한 대학원에서도 이곳에 적을수 없을 만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당함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석사 마치고난 후의 저는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지요.

저는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을 했습니다. 사회생활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극단적인 상황또한 많이 겪어본 터라 일도 인간관계도 어려움이 없었고, 저에게있어 회사생활이란 생각보다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가끔 프로젝트가 바빠져서 서버실에서 며칠밤을 지샐대면 다른 동료들은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하는데, 저는 그래도 이정도면 버틸만은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덕분에 상사들한테도 이쁨 받고, 일로도 인정받고, 술자리에는 꼭 불러야하는 인물로 자리 매김 되어갔죠. 그리고 전문연 마치면 삼성같은 대기업을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꽤나 열심히 일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중 전문연 하던 회사에서 '병' 으로 KT에 파견을 가게 되었습니다. KT가 갑, 삼성전자가 을, 우리가 병이었죠. 삼성이 통신망 관련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있는데, 그중 일부 서버를 우리회사가 개발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래서 매일매일 선릉에 있는 KT 개발센터로 출근했습니다. 삼전 사람들도 함께 출근해서, 같이 꽤나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납니다. 적어도 초기에는요..

프로젝트가 무르익어 가던 무렵 어느날이었습니다. 아침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떠들석 하길래 뭔일이 있나 기웃거렸죠. 보니까 삼성전자 수석이 KT 대리 앞에 죄지은것처럼 서서는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삼전 수석은 사람도 좋고 책임감도 있고 게다가 쾌남형이라서 인기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의아했습니다. 슬적 귀를 기울여 보니, 새벽 작업에 참석 안했다고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KT대리: XX수석, 어제 밤에 뭐했어요. 왜 안왔냐구요.
삼전수석: 죄송합니다. 어제 와이프가 갑자기 아파서 밤새 병원에 있다 왔습니다.
KT대리: 아이 C8 공과사도 구분못해? 당신와이프만 아파? 내 와이프도 지금 아파서 누워있어! 뭐하자는거야!!!!

실제로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 대리는 KT 내에서도 또라이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다른회사 책임자에게 아랫사람 대하듯이 싸가지없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군요. 게다가 삼전수석은 팀 부하직원들 대여섯명 앞에서,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KT 대리나부랭이한테 저런 모욕적인 소리를 듣고도, 이 악물고 참으시더군요. 한성격 하시는 분이었는데, 참을수밖에 없는 그 기분이 과연 어땠을지.

삼전 수석의 말이 거짓말이든 진짜든 저에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삼전 수석이 밤새 술먹느라 참석 못하고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확증이 없는 한, 아니 확증이 있더라도 그를 공적인 자리에서 비난하고 모욕을 준다는것은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계약관계에서 갑이라는 이유로 타인을 하인 대하듯 대할수 있는 사회에서, 쏟아지는 모욕을 가족들을 위해, 동료들을 위해 참아내는 그분이 대단해 보이면서도 안쓰러웠습니다.

그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 그 삼전 수석은 힘없이 나가서 한참뒤에 돌아왔고, 다른 삼전 직원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쥐죽은듯이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든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바닥 떠야겠다."

그후 많이 알아보고 많이 준비한 결과, 대략 2년 후 영국으로 오게 되었네요. 하지만 한국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것을 좋아하던 저는, 언젠간 꼭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때는 부디 저런 문화가 사라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여기서 알고지내던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 정말 반갑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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