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장애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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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A는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다. A는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의 앞날은 창창했다. 대형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기 전까지는.

휠체어에 탄 A가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은 1초 앞도 볼 수 없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당신도, 당신의 가족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후천적 장애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느 누가 자신이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A도 그랬다. 그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당신은 평생 누워서 살게 될 거다. 휠체어도 못 탈 거다’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됐다. 미칠 거 같았다”면서 “몸이 너무 아팠지만, 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고 말했다.

A의 아버지는 엄격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들것에 실려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엉엉 울었다. A도 울었다. 늘 걸어서 들어갔던 집이었는데. A는 “방에 혼자 누웠는데 내가 너무 비참했다”고 했다.

재활을 시작했다. 재활 전문의는 “두 팔이 있으니까, 다 할 수 있다”고 A에게 말했다. 두려워하는 A에게 “빨리 사회에 나가 직접 부딪치라”고도 했다.

휠체어가 익숙해진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막상 부딪친 사회의 벽은 그의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A는 “학교에서 사람들이랑 부대끼니까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A는 한 기업 공채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는 “장애인이 집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누구도 원해서 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다. 장애 때문에 숨지 말고, 시스템을 바꾸라고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점에서 나는 A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모두가 그와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의 가정은 유복했다. 덕분에 그는 내로라하는 재활 전문의에게 치료받았다. 대학원이라는 적응기를 거칠 기회 또한 받았다.

A가 대단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까,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장애인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국가나 나서야 할 것이다. 늘 그러하듯 나랏돈은 한정돼 있고,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다. 장애인 예산은 그중에 몇 위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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