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톡, 슥,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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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잔을 준비하고, 오프너를 박아 코르크를 까고, 디켄딩 하는 과정 또한 와인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술병을 따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니. 코르크가 찢어져 와인병 주둥이에 박혔을 때에 참담함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음식이며 식기까지 다 세팅했는데!

와인 잔은 또 얼마나 예쁘고, 비싸고, 연약한지. 와인잔은 깨지지 않는다. 다만 산산이 바스러질 뿐이다. 몇 해 전 지인의 집에서 열린 연말 파티에서 와인에 취해 떠들다가 툭, 테이블 모서리에 와인 잔을 쳤다. 잔의 낙하가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부서진 잔의 잔해를 치운다고 파티의 분위기가 다 부서졌다.

코르크 마개를 여는 기술도, 값비싼 잔도 필요 없는 와인이 있다. 술을 마실 입만 있으면 된다. 미국산 와인 ‘스택 와인’(STACK WINE)이다. 생김새가 독특하다. 비닐 포장 안에 다리 없는 플라스틱 와인잔 4개가 차곡차곡 맞붙어 서 있다. 각각의 잔 안에서 검붉은 포도주가 찰랑인다.

측면에 지퍼 프린팅을 잡아 아래로 뜯어내린다. 포장이 벗겨진다. 각각의 잔을 잡고 다른 방향으로 힘을 준다. 톡, 잔과 잔이 분리된다. 잔마다 와인 187㎖를 담고 입구를 알루미늄 호일로 막았다.

슥, 벗기자 호일을. 화려한 과일향이 확 퍼진다. 개성있고 매력적이다. 정통파 와인 마니아들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근본 없는 술꾼인 내 코에는 아주 좋다.

마시자. 음, 포도 맛이 진하다. 달달한데 부담스럽게 달지는 않다. 떫은 맛, 쌉싸름한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묵직하지 않고 싱그럽다. 남녀노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다. 맛있다.

편하다. 앞서 말했듯 오프너도, 잔도 필요 없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전혀 없다. 좋다.

나의 이 호평은 애초에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일지도 모른다. 제품 컨셉트가 워낙 캐주얼한 데다 가격도 1만 5000원이다. 비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컨슈머 와인 어워드(CWA)에서 2013년 은메달을 받은 걸 보면 풍미가 아주 형편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코스트코에서 샀다. 코스트코에는 레드 블렌드만 들어온다. 좀 찾아보니, 스택 와인 까베르네 쇼비뇽과 스택 와인 샤르도네도 있다. 코스트코는 스택 와인 까베르네 쇼비뇽과 스택 와인 샤르도네를 수입하라 수입하라.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혼술족에게 이 술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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