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든다는 것, 한자로 쓰면 노화(老化)라는 것은 분명 약점이다. 반대로 말하면 젊다는 것은 벼슬이다. 나이가 들어 삶의 지혜를 쌓아가고, 부나 명예를 얻는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전 주짓수를 배우러 도장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주짓수는 수련 후 여자가 남자를 제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술이다. 그래서인지 도장에는 이십대 초반 여자 관원들이 많았다. 마치 청춘 시트콤 마냥 그 나이 또래 남녀들이 화기애애하게 떠드는걸 보자 괜스레 소외감이 들더라.

나에 대해 관심, 하다 못해 작은 질문이라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당연하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 (지금 기준으로는 뽀송뽀송한 애기나 다름 없는 스물다섯 먹은 선배 한 명만 과방에 들어와도, 나와 내 동기들은 뭔가 불편해서 핑계를 대고 과방을 나가곤 했었는데, 싸구려 흰 도복을 입고 흰 띠를 맨 서른 넘은 아저씨한테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지 않나. 미남도 아니고.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했다. 근데 하하호호 떠드는 그들을 보니 어딘가 배알이 꼴렸다. 참 찌질하다만 괜스레 이 아저씨도 대화해보면 꽤 괜찮은 남자고, 한창 때는 너희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자들도 많이 만나봤다는 이상한 잡소리를 해대고 싶었다.

여자에 대해서만 촛점을 맞추면 뭔가 주제가 오독될 것 같아 몇 마디 더 붙이면, 내게 아무 관심이 없다는데서 비롯한 섭섭함은 젊은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느꼈다. 괜스레, 지금 너희들이 뽐내는 것들은 나도 다 겪어보았고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것이다.

그 바보 같은 욕망을 감지한 순간, 왜 중년의 직장인들이 싫은 기색이 역력한 신입사원들 억지로 회식 자리에 불러놓고 자기들 과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지 번뜩 깨닫게 되었다. 그건 젊음에 대한 부러움과 관심의 희구였던게다.

사람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그건 본능이다. 근데 이 관심을 얼만큼 바라는가에서 차이가 있다. 내 경험 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이것저것 사적인 질문을 하면, 신이 나서 물어본 것 이상으로 장황한 대답을 해준다. 반면 나이가 어린 사람은 그 질문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자신을 어필한다는 것 자체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면,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반면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들의 관심에 예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나 좀 보라고 더 떠들어봤자 더 추해보일 뿐이다. 따라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복잡하게 쓸 것이 아니라, 어차피 얻을 수 없는 관심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가진 것 없는 젊음보다 부를 쥔 힘 있는 중년이 더 낫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불쌍한(?) 오포세대를 보노라면 그 말도 전혀 틀리지는 않을지 모른다만 돈과 권력이 나이듦을 상쇄할 수 있으려면 그건 실로 대단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고작 동년배들 사이에서, 그 친구 성공했어라는 소리 듣는 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내 시계는 꽤 비싸다. 처음 취직했을 때 객기로 한번 사보았고 바로 후회했다. 그런데 얼마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은퇴한 임원 아저씨가 자기 시계를 보여주며 뭐 그런 격 없는걸 차고 다니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아마 그 아저씨 시계는 엔트리급 외제차 한대값은 될 것이다. 근데 난 그 아저씨의 시계는 하나도 안 부럽고 시계는 고사하고 양주 한 병 살 돈이 없어서 라운지 바를 못 들어가고 대신 입구에서 헌팅을 하는, 그리고 그게 흠이 되지 않는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눈이 간다. 그 시간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걸 아니까.

분명 젊은이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종전 세대의 가치와 문화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너 임원돼라."가 놀리는 말이라고 한다. 전 세대가 향유하던 것과 그들의 가치는 전혀 다르고 무엇이 성공인가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해봤자 더 혐오와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젊게 살고 있어요."라고 항변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억지로 머리를 염색하고 장발을 하고 곧 죽어도 정장은 안 입는 아저씨들도 있다. 다른 사람 취향이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만 나이가 먹어 젊은 사람들 패션을 따라한다는게 차라리 정장을 좀 영하게 입는 것보다 더 호감을 주는지 의문일 뿐더러, 어차피 쿨한 사람도 아니면서 쿨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그렇게 행동하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경우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보통은 매력이 없다.

인격의 깊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설령 본인이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되는 말을 줄 수 있고 그 본의가 충심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떠들면 그것도 꼰대짓이다. 만약 십년 전 내 앞에, 만약 지금의 내가 나타나 썰을 풀었다면 한창 젊던 나는 틀림 없이 "까고 있네." 라고 답했을 것이다. 젊음은 젊은이에게는 너무나 아깝다는 버나드 쇼의 격언처럼, 방황하고 불행에 취약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그 모습이 안타깝게 보일 때도 없는건 아니지만 당장 나 자체도 그렇게 살았고 돌이켜봐도 그 시간을 거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자조 섞인 결론 밖에 나지 않는 이상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격언도 격언이 아니다. 당장 나부터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조언질을 한단 말이냐.

나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이다. 급속도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서른이 갓 넘었을 때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지금은 별 자신이 없다.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그걸 잘 인지하고 다른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면 있어보이는건 어려울지 몰라도, 없어 보이는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심한 결론을 내려본다.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몇 년 지나면 난 아주 훌륭한 꼰대가 되어 있을 것 같다. 큰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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