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하지 못한 문과.

다시 돌려주질 못하는 것을 돌려받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니 죄스러운 일이다. 내가 부푼 꿈을 꾸고 문과에 진학하고 한창 공부를 할 때엔 기필코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신 부모님에게 꼭 보답하리라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졸업을 하고 지금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왜 취직을 하지 않고 공부를 더 하냐고 물으면,
“꿈이 커졌다”라고 대답하려다,
“나는 불효자라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누구의 아들은 벌써 취직을 했고,” “누구의 딸은 결혼을 해서 벌써 용돈을 다 주더라,” 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져가는 부모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못난 금지옥엽(金枝玉葉)인 아들을 위해 비싼 생선을 굽고 밥을 차린다. 평생을 헤아려야 할 마음 한 숟갈 위로 제일 맛있는 부위의 생선을 올리고 내 입에 들이밀며 밥맛이 괜찮냐고 물어본다. “자식이란게 정말 무엇일까”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아파온다.

이과에 진학했더라면 어땠을 까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내 모습을 상상하면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온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고맙다”라는 말만 반복하던 우리 엄마. 얼마나 깊은 마음에서 길러내야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가방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겨울 외투가 해질수록 알게 된다.

내가 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모두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매일 밤 자신을 뾰족하게 깎아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고 싶었다. 괜찮아요, 뭐 어때요. 다자이 오사무가 될 필요는 없잖아요. 힘을 내요 라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문학을 읽고, 이론과 정책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이런 게 공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다. 가끔은 어느 석학의 비상한 이론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고 그 밑에 감춰진 깊은 상처와 따뜻한 시선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이런 그들과 생각을 나란히 하고 같은 숨을 쉰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벅찬 일이었다. 내가 끝내 취직을 하지 않고 더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까지 공부하기로 검은 돌을 삼키듯 다짐을 했는데. 죄책감은 짊어지는 숙명이라고 받아 들였는데. 오늘 같은 날은 버텨내는 것이 힘이 든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친척 분들과 괜찮은 척 부모님의 웃음소리의 끝이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무엇이 잘하는 걸까. 

스팀잇, 돈을 벌면 죄책감을 덜 수 있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너무 편해진 것 같다. 원래 사용하던 SNS와 다르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접하고 또 가끔 알코올 냄새나는 속내를 알게 된다. 어찌 사람은 다 비슷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좋다. 처음에는 컨셉을 잡고 무겁게 갈려고 했는데 이제는 막 똥글?도 싸지른다. 정체성이 짬뽕이 된지는 오래다.... 그래도 이런 글들에도 업보트 및 댓글을 달아주시고 용돈도 쥐어준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이번 겨울의 끝이길 바래본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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