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던 날, 희망의 무서움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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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모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당시 체감하는 취업의 어려움은 바늘구멍이 아닌 마이크로-나노입자 만큼이나 작았으므로 일단 먹고 살자 라는 마음이었다. 계약직이니 뭐 어차피 쓰다가 짤리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지만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선배들이 좋아서 조금 더 일하고 싶은 회사였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자마자 3개월 뒤에 정말 말 도안되는 일로 선배들이 전부 관뒀다. 알고 보니 겉으로만 멀쩡할 뿐 회사는 업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악명이 높은 회사였고, 시스템은 철저히 회장 중심으로 움직이는 독재국가나 다름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선배들이 자기 선에서 업무를 커트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었기에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 관둬야겠다. ”

버틸 때 까지 버텨보려 했으나 영상을 담당할 직원이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었다. 세상에! 고등학교 방송국에서도 이렇지는 않았을 터.. 여기가 정글 오지 방송국도 아닌데 상황은 참 열악했다. 여튼 온갖 스트레스와 다른 계열사에서 짬 때리는 업무까지 도대체 계약직(임시직) 사원이 회사 재무 상황을 보고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회사 계열사에 있던 부장이 내 상관으로 오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투덜대는 나에게 그는 희망이라는 것을 심어주었다.

그 희망은 너를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말은 재계약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기회인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회사의 지원과 열악한 상황에 대해 투덜거리기는 했으나 과거와는 달랐다... 왜냐?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기술 공부를 하고, 학원에 등록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공부했다. 내가 조금 더 성장해서 이 회사를 이끌고 싶다는... 참 어찌 보면 일개 계약직 주제에 모자란 병신 같은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근데 정말 병신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전에 없던 정규직 시험이 생겨나고, 나는 그 시험을 보기 좋게 떨어졌다. 시나리오에 짜여있는 각본처럼 부장의 위로와 ‘너의 성적이 개판이니 어쩔 수 없구나’라는 말. 불과 1주일 전에 시험은 그냥 형식적이니 어차피 너는 될 예정이라는 부장의 말은 역시나 개소리였다.

“ 잠시 방심했다.. 내 처지도 모르고 ”

그러면서 너는 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라고 했다. 다시 한 번 1년을 도전해보자는 그의 말에 귀싸대기를 날리고 멋진 대사를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달리 갈 때가 없었다. 그렇게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가는 게 그날따라 너무 멀었다. 다행이 부모님한테 정규직 전환된다는 설레발을 안쳐서 위안이 되던 날..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던 그날에 나는 희망의 무서움을 알았다.

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슁숭생숭....술이 땡기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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