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일을 버린 지 오래이려니

어쩌면 이 글은 일종의 투병기이다. 낭만이라는 기이한 것에 유달리 베이고 다쳐 병들어 왔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람들아, 이것은 기형(畸形)에 관한 얘기다."(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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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an Chuong, "외딴 들판에서", 베트남 시골마을에서의 어린시절 기억을 묘사

꿈꾸는 일에는 무언가 낭만적인 면이 있다. 꿈의 미로 속을 헤매다 마주치는 아릿하거나 황홀한 지점들은 자주 낭만이라 불린다. 스탠드 불빛 아래 커피 홀짝이며 시집을 뒤적이는 새벽처럼, 존재의 가장 연한 부분이 감정과 충돌해 잔물결을 일으키며 퍼져나갈 때 우리는 거기서 낭만을 마주한다.

하지만 낭만을 꿈꾸는 특권이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은 것 같다. 선뜻 꿈꾸지 못하거나 일부러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거부반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나는 낭만을 두려워해 도주하는 쪽이다. 초연하거나 무심하지는 않다. 오히려 낭만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주위를 맴돌다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간다. 낭만의 부드러움을 열망하는 만큼 생채기가 나는 까닭이다. 그러나 또 슬그머니 돌아와 바위 뒤에 숨어 꿈꾸는 이들을 흘겨보는 것이다.

꿈의 무리들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갈구하는 낭만은 '평화로운 가족 및 친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뻔한 이미지다. 명절 때면 모이고, 대소사도 자주 챙기고, 두루 친근하고, 누구에게도 큰 비극은 없는 가족 관계가 꿈의 저편에 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제대로 희망할 수도 없기에, 꿈의 본령은 본래 과거의 영토에서 움터나온다. 낭만의 이미지도 그렇다. 나의 가족 로망스에도 거기 현실성을 불어넣는 원초적인 경험이 있다. 열 살 쯤이었던가. 조부모님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일가 친척들이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명절을 비롯한 대소사 때마다 모여 즐거웠다. 사촌들과 자주 만나 놀았고 어른들께도 종종 안부전화 드렸다. 가장 생생한 장면은 마당에서 함께 고기를 구워먹던 기억이다.

그때의 기억은 온갖 감각들로 넘쳐난다. 청량한 연보라빛의 여름밤, 고기 익는 소리에 섞여드는 모기향 냄새, 타닥타닥 숯불 검게 타는 소리, 어른들의 허허 대화소리, 아이들의 하하 웃음소리, 귓가를 맴도는 모기 날개짓 간지러워, 발을 뗄 때마다 아래서는 조약돌이 구르고, 멀리 보이는 것은 녹슨 초록빛 대문, 휘감는 빨간 장미넝쿨, 강 흐르는 소리, 달빛의 감촉, 개구리 우는 소리, 이따금씩 매미 우는 소리..

이제 기억 속에서 낡아가는 것들의 이름이다. 점점 회색빛이다. 어른들은 날로 쇠약해졌고, 아이들은 너무 커버렸다. 사고가 병마를 타고 휩쓸어 지나갔다. 조부모님과 몇몇은 이름 석자로 남았다. 중심도 잃고 먹고 살기 팍팍한 우리는 전화로 생존만 확인한다. 그마저 부담스럽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감각들이 생생해, 혹시나 싶어 잠자리에서 손을 뻗지만, 꿈은 그 언저리에도 닿지도 않는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조급한 속도로 부스러진다.

어중간한 지식과 어중간한 감각 사이에서, 나는 어떤 열망의 성취든 스러져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회의 섞인 확신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꿈꾸는 일은 드는 품에 비해 얻어지는 것이 덧없어 멀리 해야 한다 결론짓는다. 그러나 꿈꾸는 일은 폐기하지도 못해 혼란 속에서 헤매인다- 랑 반데룽, 랑 반데룽.

불완전한 도주의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손에 넣은 적 없기에 아득한 꿈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달아나고 빈 자리엔 촌스러운 진지함만 애통하다. 나는 도주의 궤적에 '낭만'이라 이름표 붙인다. 실현되길 바라는 그리움과 불가능하다는 비웃음을 함께 반죽한다. 이름이라기보단 주소에 가깝다. 이 낭만이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나중을 기약해 거처를 기록해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주구검일 뿐이다.

낭만 앞에 불능이다. 낭만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반사적으로 그림자를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낭만은 무지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아름다운 무엇이고, 거꾸로 이 성취의 어려움이 아름다움의 근거이고, 이것은 순간을 즐기는 일로는 낙관하기 어려운 어두움이라고 굳게 믿는다.

허나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가 길어져서 불길하다. 과거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추억거리도 많아져 낭만은 세를 불릴 것이다. 그때도 병든 상태로 견딜 수 있을까? 언제까지 모른척 할 수 있을까? 낭만과 마주하는 다른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 꿈꾸는 일을 버린 지 오래이려니 더 많은 꿈을 꾸게만 된다.

(가든팍님의 글쓰기 공모전에 출품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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