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1A6E9C8B-5BC5-48AC-935D-1D7A526EF5A9.jpeg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 더 흡족할 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1882. 7. 21.)

"살다보면 촛불을 끌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리 소화기를 들이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1883. 3. 28.)

8A3EE3D9-DE7D-4218-BA6C-256DB8F6CCF3.jpeg

"이 세상은 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 제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선량한 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습작을 만들기 위해 그가 많은 수고를 했다는 정도지.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습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망가졌다. 그렇게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은 주인밖에 없다. 그래, 그게 아마도 가장 훌륭한 위안이 되겠지. 그때부터는 바로 그 창조적인 손에 의해 응분의 보상이 주어지기를 희망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1888. 5.)

2A2303E3-B439-44F6-BAA3-F12EABCA50CF.jpeg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1888. 6. 23. 베르나르에게)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뜻이지."
(1888. 6.)

B6BC9757-F54C-45D4-B188-5DC74BD54F12.jpeg

"이곳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소 미신적인 생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슬프게 한다. 사실 그 말은 꽤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1889. 12.)

======

글은 모두 고흐의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고, 그림은 잘 알고 계실 고흐의 작품들입니다. 사실 고흐가 화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15년 남짓입니다. 평생을 화가로 산 이들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고흐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불태우고 3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기나 평전 같은 2차서로 이 '불태움'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 668통을 비롯해 어머니, 고갱, 베르나르 등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수록한 책입니다. 고흐의 편지들을 직접 읽어보자면 그가 말 그대로 '삶을 쏟아부어' 그림을 그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중 많은 수는 물질적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궁핍함에 잔뜩 쪼그라들어 스스로를 부끄럽고 비참하게 여기면서도 고흐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림에 대한 기이할 정도의 신뢰와 애정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적 곤궁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자학적으로 변해가는 고흐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의 중심에 여전히 그림을 위치시키고는 이를 악물고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편지에 이르는 순간까지요.

이렇듯 고흐의 그림 하나하나가 세상과 그리고 심지어 그 자신과 투쟁하며 악착같이 그려온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작품 한점 한점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사실 현장에 계신 분들이 그림을 보는 것과 저 같은 일반인이 그림을 보는 시각을 다를 수밖에 없지요. 일반인들 은 그림 하나하나가 지난한 노력과 사연의 결과라는 사실을, 즉 그것이 극도로 구체적인 산물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우니까요. 그저 좋은 그림으로 쓱 보고 끝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림이 숨을 쉰다, 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닌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주의적 감상 혹은 비평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맥락이라는 건 꼭 작품의 물리적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20세기 들어 '저자의 죽음'과 '텍스트의 자율성'(여기서 텍스트라는 개념은 그림이나 사진도 모두 포함합니다)이 선포되면서 작가의 개인사에 의지한 감상 방식은 아무래도 다소 저평가되어온 점이 있어 보입니다. 속되게 말해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텍스트'의 대상이 활자매체 바깥까지 확대되었다면 '콘텍스트(맥락)' 또한 마찬가지여야 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고흐의 경우는 더더욱 전기적인 감상이 유효하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고흐를 볼 때면 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을 떠올립니다. 벤야민 또한 몹시 곤궁하게 생활했는데, 고흐처럼 다른 이의 물질적 도움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습니다. 벤야민의 경우 그 대상이 유명한 철학자 아도르노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인물 모두 공통적으로 그 빈곤함이 작품의 스타일을 이루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고흐의 경우 여러번 덧칠해 두껍게 만든 화법이 새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지요. 오늘날에야 그의 트레이드마크지만 말입니다. 벤야민 또한 글을 쓰기 위한 노트를 구입할 돈이 없어 명함이나 전단지, 포스터 위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의 스타일은 논증적인 장문의 글이 아닌 비의적 아포리즘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또한 그렇게 여러 매체들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사유의 유격전을 벌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벤야민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스페인으로 탈출하다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절망해 모르핀을 먹고 자살합니다. 빈곤의 끝에 다가온 말로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작가라 불릴 수 있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이렇듯 가혹한 운명을 겪어와야 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일전에는 빈곤 끝에 아사한 연극인의 안타까운 사정이 매스컴을 타기도 했지요. 저 또한 일종의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기에 이런 운명들을 접할 때면 섬뜩한 것이 사실입니다. 빽도 돈도 없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공부를 한다는 것인지 누군가 질문한 적 있으니까요.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봤던, 아마도 보들레르의 것이었을 고백을 속으로 되뇌었을 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험난한 길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시의 영혼에 사로잡혀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작가는 오히려 작품에 의해, 동형의 운명에 의해 미래로부터 선택되는 것이 아닐까요? 풀려나오기 힘든 쇠사슬로서 말입니다.

고흐의 말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정말로 '죽음'이,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요?

37E4C4DA-5F18-4EA8-AC83-85527465FFCE.jpeg
△ 파리 도서관에서의 벤야민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