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몰랐었어. 네가 거기에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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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육을 키울 차롄가?


일주일에 두번씩 가는 요가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른 운동에도 눈을 돌리고 싶었다. 사실 두 번의 요가 클래스 선생님이 달랐는데, 한 분은 조금 세게 운동을 시키셨지만(지난 글에서 교양인이 되기 위해 애썼던 그 수업이다), 나머지 한 분의 수업은 내게 너무 쉬웠다.

이거 이래가지고 운동이 되겠어? 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나는 다른 수업을 찾기 시작했다. 운동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으니(읭? 누구 맘대로?) 이제는 나도 근육을 좀 붙여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물론 젊은(?) 사람들처럼 몸짱이 되겠다거나 근육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나이가 들면 근육이 점점 손실된다니, 더 늦기 전에 떠나가는 근육을 좀 잡아둬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다.

그리고. 여자라면 당연히 근육이지. 몸짱은 무슨, 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머리속으로는 이미 김연아의 탄탄하고 가는 근육을 떠올리며 수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짐에는 그룹으로 하는 수업이 여러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너무 쉽지도 않으면서 너무 어렵지도 않은, 내게 꼭 맞는 수업을 찾아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요가, 두번은 근육운동. 이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스케줄이었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처음 시도한 수업은 허탕이었다.

FITT (Frequency, intensity, time & type)
FITT라니, 웬지 빡세게 운동할 것 같지 않은가? 빈도, 강조, 횟수와 타입. 게다가 수업 설명서에도 코어(복근)와 균형을 향상시키고, 아령, 밴드, 매트 등을 이용해서 몸 전체를 강화(full body strengthening)하는 운동을 한다고 써있었다. 그런데 웬걸. 알고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수업이었다. 강사 선생님도 할아버지시다. 기껏 운동하는 게 무거운 아령을 들고 교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갔다하는 것. 사실 수업 제목만 보고는 이렇게 쉬운 수업인 줄 몰랐었다.

두번째로 시도한 수업은 Classic Weight Conditions. 근력 운동을 통해서 빨리 근육을 만들 수 있다고(Learn proper techniques for lifting free weights; get fast results)선전을 하기에 냉큼 들어가봤는데, 여기도 생각보다는 쉬운 수업이었다. 강사 선생님도 할머니. (물론 근육질 할머니셨지만.) 아마도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평균 연령이 좀 높다보니 강도를 세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정착한 수업은 Total Body Fusion.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골고루 섞어서 몸짱을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찬 수업이다. 젊은 여자 강사분이었는데 온몸에서 "너희들은 오늘 다 죽었어!!"라는 아우라를 마구 뿜뿜 뿜어내고 계셨다.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도 비교적 젊다. 오호라, 바로 이 수업이로구나!

하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수업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수업 시작하자마자 버리고 온 지난 수업들을 그리워하게 됐다. 워밍업부터 무릎이 허리높이까지 올라오도록 다리를 높게 들고 뛰기를 시키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토할 것 같아서 조금 멈추려고 하면 어느새 눈치채고 "다리 더 높이 드세요!"라고 외친다. 지쳐서 머뭇거리려다가도 "Good job, ladies! Awesome! 잘하고 계세요! 멋져요!"라고 추켜세우는 통에 다시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선생님.

그런데 이 선생님, 알고보니 거짓말장이였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플랭크를 시키셨는데, 이게 보기엔 쉬워 보여도 복근이 무지하게 땡기면서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어려운 운동이다.


이게 바로 플랭크. 가끔은 여기에서 한 다리를 들어올리게 시키기도 한다.

선생님은 분명 1분동안 플랭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물고 속으로 하나, 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 60을 다 셌는데 선생님은 "Now fifteen to go! 이제 15초 남았어요!" 하신다.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1분이 다 지났단 말이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다 끝난 줄 알고 겨우 버티던 나는 아직도 15초나 남았다는 얘기에 힘이 턱! 빠져서 몸을 일으키다가 선생님의 매서운 눈과 마주쳤다. (메두사인줄...) 다시 플랭크 자세를 잡으며 분명 선생님이 우리를 더 운동시키려고 거짓말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벌써 주말이라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생각하는가? 벌써 3월 마지막 주라고, 세월이 참 빠르다고 생각하는가? 플랭크를 해보시라. 시간이 정~~말 안 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몰랐었어. 네가 거기에 있었는지


덤벨이며 매트, 운동하는 커다란 공, 밴드 등등 온갖 도구를 사용해서 겨우겨우 운동을 마쳤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운동을 다 하고 나니 뿌듯한 마음이 컸다. 왠지 막 건강해지고, 막 근육 몸짱이 될 것 같은 느낌? 비교를 하자면 한끼 건너뛰고 5kg 빠졌다는 착각 같은 거랄까? 아무튼 운동을 할 때는 힘들었지만, 막상 수업을 끝내고 나니 개운하기도 했고,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할만 하네. 그래, 내 수업은 너로 정했어!

하지만 나는 다음날 일어날 일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불쌍한 어제의 나...)

다음날이 되자 다리부터 서서히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뭐지? 왜 이러지? 왜 다리가 뻐근한 거야? 팔은 왜 아픈 거야? 배하고 등은 왜 난리지?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내 온몸의 근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들이, 그동안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자신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노라고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깨 뒤쪽, 허벅지 안쪽, 다리 뒤쪽, 배...

머리를 묶으려고 손을 올리다가도 아이고...
잠자며 뒤척이다가 아이고...
재채기 한번 하면 아이고...

뭐 하나만 하려고 하면 온몸의 근육들이 다 "나 여기에 있어요!"라고 하듯이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미안하다. 그동안 너희가 거기 있는 걸 몰라줘서.

이두박근, 삼두박근, 복근, 햄스트링, 글루트... 이제 너희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내게로 와서 꽃이 아니, 근육이 되거라.

오늘도 선생님은 크런치 윗몸일으키기를 시키시며 말씀하신다.
"Find the dirties spot in the ceiling. And lift your torso toward it! 천장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더러운 부분을 향해서) 몸통을 천장으로 일으키세요!"

아, 당분간은 또 재채기 하면 안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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