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적인 폐기

pg.jpg
며칠간 준비하던 글을 지워버렸다. 그 글의 제목은 '휘발성의 생명력'이었다. 서론에서 영속성과 휘발성을 비교하고, 객관적 시각이 아닌 주관적 시각에서는 휘발성이 역동적인 생명력을 갖는다는 글이었다. 그 글을 펼치기 위해 완전히 휘발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저장하는 기억을 분리해야했다. 기억 또한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는 휘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경험에 비하면 저장기간이 길다. 그래서 계속해서 휘발성을 정제하려고 했다. 저장기간이 비교적 긴 기억과 경험을 분리하고, 순수한 경험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번씩 내가 오래토록 준비한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영감이 없었다. 내 사유의 폭은 한정적이고, 내 글솜씨도 부족하다. 평소, 나는 영감에 의존해서 표현하고, 영감에 의존해서 통찰한다. 독자들 또한 이를 반긴다. 평생에 걸친 사유를 풀어놓는 대목이 아니라, 번득이는 영감에 의해 순식간에 탄생한, 나도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모를 정도로, 그저 손가락에게 맡겨놓은 글이 인기가 많다. 이렇게 논쟁에 다시 불이 붙는다. 블럭체인에 기록된 영속적인 글, 그 글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게 아니라 휘발성을 지닌 영감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졌을 때 가치를 얻었다. 내 평생의 사유도 영감 없이는 싱거운 음식이다.

이틀 전에 올린 글을 생각해본다. 오리지널리티를 잃은 인류라는 글은, 두개의 댓글에 의해 탄생했다. 마인드 업로딩, 자아의 와해, 군중심리, 그리고 원본의 가치, 나는 이 키워드들을 섞어서 글을 써야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키워드를 택한건 아니었다. 나는 정신 나간 주제, 환영, 필요, 나에게라는 글에서 주제를 공모했다. 다양한 키워드들이 있었고, 그 키워드들 중 무엇으로 글을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았다. 당시에 막연히 생각하기론,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한 사회와 윤리에 대해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자아의 와해라던가 군중심리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해놓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휘발성을 가진 영감에 의존한 글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결국 자아의 와해, 군중심리라는 키워드까지도 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속적인 블럭체인에 기록된 글이 가치있는가, 즉흥적으로 주어진 키워드들을 엮어낼 수 있는 영감이 가치있는가? 아니면 그 영감을 엮어낼 수 있었던 내 사유가 가치있는가?

여기서 실마리를 찾았다. 영감 없이 시작했던 '휘발성의 생명력'이라는 글은 영속적으로 폐기되었다. 하지만 그 글이 없었다면 휘발적인 영감이 솟지 않았을 것이고,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단단하게 결합된 영속성과 휘발성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경험과 기억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