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우리들의 의식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지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 것이다. 그 의식은 어린이일 때 점차적으로 깨어나고, 매일 아침 무의식 상태의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난다. 의식은 매일 무의식의 모성적인 근원으로부터 태어나는 어린아이 같다... 중략... 그러므로 태양과 물에 대한 명상은 정신의 근원, 바로 무의식 그 자체로 하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융 기본저작집 9, 인간과 문화, p216~217)

며칠 전, 일찍 잠이 깨선 무거운 몸을 끌고 홀린 듯 숙소를 나섰습니다. 또 나도 모르게 바다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을 찍었습니다. 여행 중에도 여간해선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저인데도요.

마음 구석에선 '석양이 더 끌리는데...' 하는 생각도 어김 없이 올라왔구요.

잠에서 깬, 그러니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행하자마자 다시 무의식으로의 하강. 그보다는 낮동안의 의식에서 서서히 석양으로 가는 때, 그렇게 서서히 무의식으로 잠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서 일까요.

저자의 말처럼 태양과 물은 정말 정신의 근원이란 생각입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저를 보내준 무의식보다는 제가 갈 무의식이 끌립니다. 제가 왔던 그곳보다는 제가 갈 곳이 더 끌립니다.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일 수도 있구요. 지나온 길에 대한 실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더 문제는 이미 본 것에는 매번 실망하고 또 아직 보지 못 한 것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제 성정일 수도 있습니다. 해서 비록 그곳엔 생각지도 못 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가보고야 마는, 그리곤 또 실망하고 바로 새로운 기대를 품는, 같은 것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를 보내준 무의식은 기억하지 못 하는 기억 속의 고향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도 그 곳일 겁니다. 어쩌면 잊혀졌던 기억들이 되살아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지 잊혀졌던 기억만 살아날 것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의식과 함께 했던 여정 때문입니다. 한 때는 적으로, 또 한 때는 동반자로 동고동락한 의식과의 그 기억들이 다시 찾은 고향을 새롭게 할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명상은 그래서 그 새로운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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