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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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게 생각보다 그렇게 우울한 일은 아닌것 같다.

나는

20대초반 애니좋아하고 캐릭터와 아이돌집착으로 하루하루사는 오덕&빠순녀의 나날을 보냈다.

그 연대기가 고딩때부터 이어져 내려온거라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한적이 없었다. 회사입사를 해도 내 사랑(?)이 식지 않았던 큰 원인 제공자이자 공로자는

베프였다.

우리는 같은 오덕&빠순이라 같이 서로의 볼거리들을 챙겨가며 우리들 나름의 찐한 우정을 쌓았다.

베프가 된 계기는 세이클럽 시절 그다지 친하지 않던 그 아이에게 장난으로

우리 우정은 물보다 진하잖아

라고 한마디써서 보낸게 그 아이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게 되어 급속도로 친해졌다.

거의 잠자는 시간빼고 찰떡같이 붙어다니고 고딩부터 친해져 대학과 회사까지 같이 간 친구인데, 소문까지 돌았다. 둘이 사귄다고 레즈라고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대학때 오티도 모임도 뭉치는 사사건건 다 빠졌다. 동호회도 필요가 이미 없거니와 우리는 가상현실속 그분들이 좋았다.
쓰다보니 좀 미친여자같은데
맞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과대가 내게 와서 죽일듯한 얼굴로 제발 참석을 하라고 협박을 했는지 이제서야 아기낳고 알았네. 대학이야 시험치고 과제랑 출석만 하면 되는거 아닐랑가 하며 살았다.

역시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라고 그냥 친구 내팽겨치고 거기 젊은이들 사이에 껴볼걸 그랬다. 거참.
1년을 개기니 그뒤부터는 아무도 친구와 나를 신경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대학을 다녔지만 거의 ㅋㅋㅋ안다닌거만 못한 뭐 졸업장만 따고 대학생활의 추억도 그다지 없는 그런 생활이였다.

그런데 돈을 벌며 베프와 나의 차이가 벌어진다. 나는 가난한 집을 위해 제법 많은돈을 붙이며 쪼들리고 친구는 그야말로 세상천지 걱정없이 마구마구 하고싶은걸 다했다.

일단.
덕질하던 그분들 콘서트를 시작으로 일명 프로사진작가용 대포카메라를 사더니 급기야 스케줄을 꽤차고 일을 째며 공연을 따라다녔고, 찍새가 되었다. 홈페이지도 만들어 사진에 로고를 박고 게시했는데 퀄리티가...

암튼, 내친구는 덕질에 돈이라는 날개를 달고 같은 사회인덕후들 모임도 만들어 본격적 연예인 서포트도 감행했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보던 나는 친구가 치타같이 거침없이 뛰어가는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점점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녀와 나는 부서가 바뀌게 되고는 정말 그 옛날 레즈커플 소리듣던 여인들같지 않게 연락도 안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뜸 어느날 내게 찾아온 친구가 회사를 같이 퇴사하고 우리끼리 디자인(?)회사 같은것을 차리자고 제안했다. 디자인 관련상을 몇 번 타고 홈페이지나 자바스크립트 거기다 직찍까지 잘하는 그녀의 제안은 좀 솔깃했지만 당시에 내가 실질적 가장역활을 하는 장녀였기에 망설였고 일주일정도 뒤에 거절하겠다고 말했고 나의 단칼에 그녀도 자기는 곧 퇴사하고 서울가서 디자이너쪽 일을 할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정말 그날로 퇴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난 여전히 2교대로 공장에서 서서 일을 하고 아기달린 워킹맘이 되었는데 간간히 들려오는 그녀소식은 나를 좌절하게 했다.
자신의 재능을 일로 택한 친구의 용기가 대단하다.
난 가끔씩 디자인관련 포스팅이나 글, 잡지를 볼때마다 괜히 친구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느정도 서울에서도 자리잡고 잘살겠지? 그 사이 몇번 연락한 일은 있었지만 긴 이야기나 만남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늙음에 관해 글쓰는데 왜 친구 얘길 길게 쓰게 된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린시절보다 지금이 좋다고 쓰려던 포스팅이 옛날 같이 붙어다니던 친구얘기만 쓴 포스팅이 된것에 어떤 이유가 있을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게 생각보다 그렇게 우울한 일은 아닌것 같다는 말과 나의 베프이야기는 무슨 조합인가?

어쩌면 기억속에 20대초반인 내가 마음속 친구를 놓아주고 이제야 자연히 늙어가는것을 택하게 된게 아닐까.

이제서야 그 친구를 택하지 않은걸 후회하지 않게 된게 아닐까.

너무 오랜세월이 흘러버렸다.

즐거웠어. 친구야. 어디에서 살든 행복하길 바래.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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