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ism] 2018년 인천퀴어퍼레이드

2018. 09. 08. (토) 인천퀴어퍼레이드
1.

9월 8일 인천 퀴어퍼레이드에 가기 전 날 금요일에 주안에서 김기홍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 소개를 하자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퀴어와 이야기 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데, 내겐 그들과 같은 당사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여성이라는 소수자 내지 약자 집단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퀴어의 아픔을 공감 못하고 무례한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또 자칭 앨라이들이 퀴어를 혐오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기홍님과 카페에서 약 1시간정도 이야기를 했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도 이야기 해 주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천퀴어퍼레이드가 어제와 같이 아수라장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2.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는 퀴어퍼레이드에 늦게 도착했는데, 가기 전에 지인들이 SNS에 올린 내용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동성애 반대 기독교 세력들이 성소수자들을 폭행하고 축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폭행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아 근처 카페에 피신해 있다는 사람의 말에 더욱 겁을 먹었다. 혼자(누가봐도 여성으로 패싱되는 외모의 소유자) 그 아수라장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무서워서 남성 지인과 동행했다.

3.

상황은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내가 간 곳은 축제 현장이 아니라 집회 현장 같았다. 무지개와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라는 피켓이 어지럽게 섞인 곳에서 내 지인과 나는 여기저기를 헤메었다. 혐오세력들을 뚫고 지나가려고 해도 연신 내가 들은 말은 “길이 없어요. 옆으로 돌아가세요.” 였다. 아마 나와 내 지인이 둘 다 시스젠더 헤테로로 패싱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걔들이 우리를 보고 “동성애를 찬성하는 청년들”이란 생각을 못 한 거지. 아마 길을 지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 정도로 착각을 하신 것 같다.

4.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혐오세력의 행동이 거세지는걸 보았다.
내 앞에서 퀴어&앨라이들에게 물을 뿌리는 할머니 인상착의를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마주쳤을 때 할머니한테 “아까 물뿌리셨죠?” 라고 했다. 그 할머니는 발뺌했고 사진도 찍어놨다니까 “응 그래 찍어라 찍어.” 하고 다시 뒤로 도망가셨다. (사진-1)
집에 돌아와서 SNS를 확인해 보니 혐오세력들의 만행은 너무나 끔찍했다. 누군가는 기름통을 가져왔다가 경찰에게 빼앗겼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퀴어에게 위협을 가했다. 또 공연 트럭의 타이어를 터뜨려서 행사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퀴어&앨라이들 몰카 찍으면서 자기네 편이 사진 찍히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사진 찍지 말라고 화냈다. 내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할아버지에게 팔을 물린 것이었다. (사진-2,3)

온종일 혐오세력에게 둘러싸여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폭행 뿐만 아니라 갖가지 폭언을 들어야 했다.
“너는 애미애비도 없냐?”, “나중에 자식이 남자며느리 데려오면 좋겠어?”

5.

혐오세력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굴하지 않고 우리끼리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서 조촐한 공연을 했다. 뒤에서는 혐오세력들이 피켓을 들고 동성애 반대를 외쳐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축제를 즐겼다. 공연팀들이 열심히 춤을 추고 혐오세력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노랫소리가 안들려도, 우리끼리 입을 모아서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을 이어갔다.
급기야 나중엔 어느 할머니가 물통 두개로 박수를 치면서 시끄럽게 굴었고, 우리의 노랫소리가 묻히도록 찬송가를 부르면서 우리의 축제를 방해했지만 우리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6.

나는 혐오세력들이 퀴어를 폭행하는데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던 경찰을 기억한다. 저쪽에서 몰카를 찍어서 이쪽도 똑같이 카메라를 들이밀자 그때서야 “저쪽을 제지할 테니 당신들도 하지말라.”고 하던 경찰 측 입장을 나는 기억한다.
엄연히 집회 및 시위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별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댄 동구청을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안다. 자유와 평등, 권리를 울부짖는 자들에게 기득권들이 어떤 잣대를 들이밀며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라는 핑계로 약자를 규탄하는 방식을. 이 혐오의 굴레는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해서 당신들이 아무리 포장하려고 애를 써도 우리는 안다.

7.

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스트레스성 두통이 왔었다. 퀴어 당사자가 아닌 나조차도 너무 힘들고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일로 확신할 수 있다.
내년 2019년 인천퀴어퍼레이드에는 더 많은 성소수자, 더 많은 앨라이들이 모일 것이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와 권리를 외칠 것이다. 2018년 9월 8일에 함께 연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년에 다시 이자리에 모여서 혐오자들을 몰아낼 것이다. 올 해엔 “부디 인천퀴퍼에 가신 분들 모두 다치지 말고 오세요” 라고 말한 사람들이 내년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8.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인천퀴퍼 조직위원회다. 어제오늘로 조직위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혐오세력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토해내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조직위는 어제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며, 나는 앞으로도 당신들과 연대하고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나는 이날 우리가 흘렸던 눈물을 잊지 않고 앞으로 몇 곱절을 갚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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