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possible

나도 저랬을까? 방학을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르는것 같다. 큰애는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을 관리하는게 눈에 보이는데, 둘째는 시간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진 콜라병 마냥, 하루종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아직 애기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기 중에 미치도록 바빴던 내 몸과 마음을 나역시도 풀어놓은 상태에, 학교 다닐 때처럼 시간표대로 딱딱 움직이지 않는지라, 그동안은 나도 늦잠자고 내 단도리 하느라, 핸드폰이나 게임기 잡고 있는게 자꾸 보이면 야단이나 쳤지, 딱히 아이들의 시간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어영부영 하다보니 벌써 방학 3주차에 접어들었다.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글을 읽고, 글쓰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물론 타겟은 큰아이지만, 둘째에게 한글학교만 보낼 일이 아닌 것 같아(읽고 쓸줄은 아는데, 그 뜻을 모른다ㅠ) 둘째의 한국말 교육도 시급하던 차라 아침먹고 좀 쉬고 일하는 아이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콘도 밑에 있는 스타벅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우리 딸은 나를 닮아 책을 읽고 무언가 끄적이는걸 원래 좋아하는 편인데, 둘째는 아직 성향을 잘 모르겠다. 아니 아직 성향이라는게 게임기와 유튜브 동영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이 참에 이놈이 한글을 읽고 쓰는 단계를 벗어나, 본인의 글을 쓰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러한 작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이라도 알려주고 싶다.

한글로 된 책을 못읽어내는 딸을 위해, 일전에 한국으로 복귀하시는 분께서 주고가신, 논술책을을 지금 보니, 얇은 책이라 부담없이 접근해서 독후감을 쓰기에 좋을 듯 하다.

그 중 [산 위의 불]이라는 책을 골라 읽고, 생애 첫 한글 독후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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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딴에는 구글 번역기도 돌리고, 지우기도 하고, 귀엽다. 그런데 이 감동의 물결은 무엇인가… 원래 주책맞게 눈물을 찔끔찔끔 자주 흘리는 편인데, 엄마가 하라고 하니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 노력하여 쓴 글이… 괜찮다. 잘 쓴다. 잘 하지도 못하는 언어로 된 책을 읽고 이만큼 글을 쓴다. 발레를 접고 지도 나도, 약간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공부 말고 잘하는 게 춤추고 발레하는거 말고, 글쓰기도 넣어도 될 것 같다. 아직 초등 저학년 수준의 한국어 실력으로 쓴 글이 이정도면, 이 아이는 글을 계속 쓰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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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우리 둘째… 한글로 된 동화책 한 권 도 아니고,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 딸아이처럼 한국말이 서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하는 아이ㅠㅠ. 단순히 한국 친구들을 만들어주지 못한 엄마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특이한 경우인데... 한글학교를 다녀서 읽을줄은 안다. 그런데 뜻을 모르니, 한 문장을 읽으면 그만큼 내가 설명을 해줘야 한다.

까마귀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있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다니… 둘째에게 내가 내린 미션은, 책을 읽고 읽은대로 필사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페이지 읽고 이해 하는데만 20분 이상 걸린다. 그나마도,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야했고, 갑자기 피곤해서 2분 정도 눈감고 엎드려 있어야 했으며, 먹고싶지도 않은 케잌까지 주문한 후였다.

분노게이지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가 죽어도 하기싫은 일을 겨우겨우 하는데, 필사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한시간 동안, 오늘 분량 4페이지를 읽(히)고 이해하고(시키고) 필사했다(시켰다). 나는 까마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그림을 통해 내 인생 처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자세히 알게 되었고, 까마귀가 알을 까고 나와 힘센 어른 까마귀가 되는 첫 과정을 생생하게 구연할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방학동안 딸아이는 부쩍 성장할 듯 하다. 둘째의 한국말이 조금은 나아질 듯 하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더 늙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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