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찬 상영중] 리틀 포레스트 (2018) - 뿌린 만큼 거두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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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탄에 살면서 하늘을 완상하기는 어렵다. 나무숲 대신 고층 빌딩이 우거진 거리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 본다한들 우리를 가슴 벅차게 하는 하늘의 광활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대도시의 인공 빛 무더기 때문에 시인 윤동주처럼 별을 헤며 밤하늘과 대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빠듯한 부대낌으로 점철된 도시의 지형도는 도시의 하늘에도 투영된 듯해서 도시의 하늘은 자유보다는 구속에 가깝다. 우리의 상상력을 제약한다.
필자는 가끔 서울을 벗어나 탁 트인 하늘과 마주하게 되면, 우주의 기원을 더듬어 보거나 우주의 끝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라는 존재의 무한한 하찮음이 느껴져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변화될 세상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지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아둔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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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하늘보다는 땅에 대한 메타포로 구성된 이야기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하늘이 먼저 떠올랐다. 영화의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그랬던 것처럼 필자도 하늘 한번 올려다볼 새 없이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할 때, 초미세먼지가 기관지의 모세혈관까지 침투한 느낌이 들 때, 뻑뻑한 편의점 도시락의 쌀밥을 도저히 삼키지 못했을 때, 자신이 베푼 호의를 유치한 자랑의 무기로 사용하는 남자친구가 배신감을 주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교훈을 세상이 주려는 듯 임용고시에서 계속 낙방했을 때... 혜원이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의 합은 어쩌면 서울에서 혜원이 보낸 시간의 과반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살다 도시로 떠났던 혜원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겨울로부터 출발한다. 전통적 농촌의 겨울은 노지(露地)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을 가지고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시기다. 그러니 수확물이 미흡하거나 없다면 겨울은 지옥에 가까워지게 된다. 한편,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한 채 시골로 돌아온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그녀가 펼쳐봤을 사전엔 '사계절'이라는 단어는 없고, '겨울'만이 빽빽했을 것이다. 생지옥이다.
도시의 겨울에서 시골의 겨울로, 공간적 배경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혜원의 얼굴엔 왠지 미소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혜원은 자연의 식재료를 가지고 그녀의 엄마(문소리 분)가 가르쳐준 레시피를 참고해 손수 음식을 해 먹으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다. 그녀는 사계절의 순환을 온전히 치러 내면서 직접 농작물도 키운다. 그런 그녀의 곁을 고향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이 따듯하게 지켜준다. 선이 그리 굵지 않은 얼굴을 지닌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는 제법 자연스레 농촌의 풍경 속으로 함께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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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는 우리가 흔히 대중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재미 요소가 없는 영화다. 내외적 동기와 목적이 뚜렷하고 개성도 강한 캐릭터, 인물 간의 긴박한 갈등, 촘촘한 서사, 플롯의 미학, 화려한 CG와 시각효과 등이 전무하다. 대신 잔잔한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안전하게 기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정형화된 일부 상업영화가 내뿜는 독소를 디톡스 해준다. 혜원이 시골로 돌아온 이후 먹는 생식 혹은 자연식은 <리틀 포레스트>의 정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혜원은 다채로운 식재료만큼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삶의 의미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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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혜원에게 시골은 생활이 좀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도시보다 훨씬 편안한 공간이다. 하지만 농촌은 낭만적으로 자연을 노래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고생도 해야만 농작물을 수확해 먹거나 팔 수 있다. 문제는 눈물 날 만큼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도 예상치 못한 대형 태풍이 덮쳐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뿌린 만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을 대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나긋이 우리에게 말한다. 겨울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봄이 오듯 우리의 아픔도 점차 아물 것이라고. 뿌린 만큼 거두지 못할지라도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나의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자고. 나와 연결된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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