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밤이선생이다 황현산산문집

저자가 약 한달전 고인이 되셨다는 걸 다 읽고 알았습니다. 한없이 슬픈 마음으로 고인의 가는 길이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책이라고 제대로 읽을 만한 것이 많지 않다. 좀 그럴듯해 보이면 실상 내용은 빈 껍데기이거나 빈약한 수준의 공감만을 얻으려 쓴 가벼운 것이 전부였다. 아직 보는 눈이 없는지 잘 골랐다가도 함정에 잘 빠진다. 그래서 좀 겁이 났다. 좋은 책을 고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작지만 의미있는 책을 만났다. 읽기도 어렵지 않으며 깊이가 있다. 한국 작가의 책 중에선 드물게 적극 추천을 해주고 싶다.

실상 이 책을 접하게 된것도 그저 무엇을 읽고 싶다는 욕심에 훅 고른 것이라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청 빠져들어 두어시간 만에 완독했다. 나름대로 좋은 구절은 따로 메모를 하기도 하고, 생각에 빠져 잠시 책 넘기는 것을 잊곤 했다. 재미있었고, 공감도 훅 되었다.

막연하게 글 쓰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러서 이 글솜씨가 부럽기만 하다.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오래 책과 글, 언어를 다루고 강의해온 연륜이 드러난다. 그런다고 특별히 잘난 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소박하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경험들, 나름의 철학과 양심을 잘 버무려 내놓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맛있고 먹을 만하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격동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내재된 분노와 양심의 소리가 여과없이 드러난다. 마지막은 고 노대통령의 편지에 관한 글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무엇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야할까. 다만 깊은 시선과 뜨거운 양심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감수성도 본받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의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12페이지. 밤이 선생이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21페이지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115페이지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억압받은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275페이지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28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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