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시아왕 오파(Offa)와 카롤루스 대제 - 2대에 걸친 수모

  1. 앵글족과 색슨족, 유트족이 영국으로 이동하여 수많은 왕국을 건설한 이래, 7명의 중요한 앵글-색슨계 군주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다른 군소왕국들을 위압하며 브리타니아(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에서 패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의 명칭은 브레트왈다(Bretwalda). 뭐, 이렇게 얘기하니 뭔가 대단히 거창한 거 같지만 군소왕국이 난립하는 가운데 좀 더 큰 권력을 가진 앵글-색슨 계 군주였다고 보면 됩니다.
    브레트왈다란 단어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9세기 후반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치세기에 출간된 『앵글로-색슨 연대기(이하 연대기)』였습니다. 그보다 1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비드(Bede)가 『영국민의 교회사』에는 '브레트왈다'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비드는 앵글-색슨 계의 강력했던 일곱 명의 왕을 기록했는데, 『연대기』는 이들을 '브레트왈다'라고 칭했습니다. 『연대기』는 2명의 브레트왈다를 더 추가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연대기 작성을 지시한 알프레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이 알프레드의 할아버지 에그버트(Ecgberht)입니다... 집안 자랑 의도가 너무 심한 거 아니오.

  2. 앞서 얘기했지만 『연대기』는 서색슨의 왕 알프레드의 지시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색슨의 시각이 지극히 많이 반영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알프레드의 할아버지 에그버트를 한창 괴롭힌 인물에 대해 상당히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특히그 에그버트를 괴롭힌 인물, 즉 8세기 후반 진정한 '브레트왈다'였던 머시아(Mercia)의 국왕 오파(Offa)의 사례가 그러합니다.
    오파는 757년 머시아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796년까지 머시아를 통치하면서 그야말로 잉글랜드 전체를 쥐락펴락했던 인물입니다. 켄트(Kent) 왕국이 혼란한 틈을 타서 개입하여 감독권을 얻어내는 한편, 불완전하나마 남색슨(서섹스)을 통치하게 됩니다. 알프레드의 할아버지 애그버트는 오파가 자신의 사위 베올트릭(Beorhtric)을 밀어주는 바람에 서색슨 왕위 경쟁에서 패배하여 해외에 망명을 갔는데 그는 머시아왕 코엔울프(Coenwulf)가 숨을 거둔 뒤에야 서색슨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즉 모든 면에서 오파는 자신의 통치기에 잉글랜드 내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물이 없는, 진정한 브레트왈다였습니다. 하지만 오파는 동시에 에그버트의 둘도 없는 원수이기도 했고 결국 서색슨이 잉글랜드의 주도권을 쥐게 된 다음부터는 폄하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여담으로 『연대기』보다 한 세기 정도 뒤늦게 작성된 또 하나의 연대기가 있습니다. 바로 『웨일즈 연대기』라는 책인데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웨일즈에서 작성한 역사서입니다. 말만 웨일즈 연대기지 사실상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망라하는 '브리타니아 역사서'입니다. 이 책에서도 '브레트왈다'라는 표현은 안 나오지만 앵글-색슨 계에서 가장 높은 왕이라는 개념은 나옵니다. 근데 역시 이번에도 머시아 계열이 아닌 노섬브리아 계열로 얘기를 합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는데 웨일즈와 국경을 맞댄 머시아는 수 세기에 걸쳐 웨일즈를 복속하려고 합니다. 이에 강력하게 저항을 했던 웨일즈에게 머시아가 좋게 보일 리 없죠. 특히 8세기는 웨일즈가 힘을 얻은 시기였습니다. 이를 경계했던 오파는 '오파의 방벽(Offa's dyke)'이란 장성을 쌓아 웨일즈를 경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오파의 장벽은 로마 제국 시대에 세워진 하드리아누스 장벽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오파의 장벽은 하드리아누스 장벽보다 훨씬 큰, 영국 고대 건축물 중 최고의 크기를 자랑합니다. 웨일즈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암시하는 한편, 그렇게 거대한 장성을 쌓을 만큼 오파의 힘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거죠.

  3. 하지만 이렇게 막강한 오파에게 2대에 걸쳐 수모를 안겨주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카롤루스 대제(Carolus the magnus)였습니다. 오파가 잉글랜드에서 '왕 중의 왕'이었다면 카롤루스는 유럽 대륙에서 '왕 중의 왕'이었으니깐요. 카롤루스의 주요 정복지가 중유럽, 동유럽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카롤루스와 오파가 직접 충돌한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두 제왕은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일단 오파의 정적들이 카롤루스의 궁정으로 망명을 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알프레드의 할아버지 에그버트는 오파의 사위에게 왕위경쟁에서 패배하여 해외로 망명을 갔는데 이를 받아준 사람이 바로 카롤루스였습니다. 카롤루스의 궁정에는 에그버트 말고도 오파에게 지배받던 켄트의 왕족들 역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카롤루스가 이런 망명객들에게 직접 지원을 한 건 아니지만 궁정에 머무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오파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짐작케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사이가 크게 마찰을 일으킨 건 바로 결혼 사건이었습니다. 789년 무렵 카롤루스는 자신의 아들 카롤루스와 오파의 딸 중 한 명 간의 결혼을 제안합니다. 오파가 베올트릭을 사위로 삼은 전례를 생각한다면 괜찮은 제안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오파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 제안 대신, 카롤루스의 딸을 자신의 아들인 에그프리트(Ecgfrith)에게 시집보낼 것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을 들은 카롤루스는 격노합니다. 카롤루스는 단순히 오파의 제안을 거절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잉글랜드의 상선이 카롤루스 통치령 내에 정박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교역을 끊어 버립니다. 고대 유럽의 혼인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기에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짐작컨대 어디 조그만 왕국이나 다스리는 주제에 유럽의 제왕에게 딸을 보내라는 거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직 카롤루스가 로마제국의 제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자기는 오파와는 급이 다른 제왕이라는 의식을 비춘 거 같네요. 반대로 이러한 카롤루스가 준 모욕에 어떤 대응도할 수 없었던 오파를 보면 역시 힘의 차이가 컸다는 걸 암시합니다.

  4. 카롤루스와 오파 간의 혼약이 깨지고 다음해 말까지 교역금지 처분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뭐 이후 카롤루스가 오파에게 보낸 서신에는 오파를 여전히 '형제'라 칭하는 걸 보면 분쟁이 그리 길게 가지는 않았던 모양이긴 합니다. 하지만 오파가 당한 수모는 그의 자식 대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오파는 796년에 사망합니다. 잉글랜드에서 철권을 휘두른 오파 역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오파에게는 앞서 언급한 에그프리트라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기에 후계가 든든할 거 같았습니다. 에그프리트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급사하기 전까지 말이죠. 『연대기』에 따르면 에그프리트는 고작 141일 간 왕위에 있다가 사망하게 되고 이는 오파와 머시아, 그리고 오파가 힘겹게 쌓아놓은 앵글-색슨 전체에 대한 영향력마저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오파는 자신의 자손들에게 왕위를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해 가까운 친척들을 모조리 제거했는데 정작 에그프리트가 죽고 나니 그 뒤를 계승할 자가 없어집니다. 결국 오파의 먼 친척인 코엔울프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딸 '애드버(Eadburh)'의 안위까지 위태롭게 만듭니다. 애드버는 앞서 얘기한 서색슨 왕 베올트릭의 아내입니다. 아버지 오파가 밀어준 덕에 베올트릭이 왕이 됐으니 애드버의 입김은 여느 왕비와 달랐을 겁니다. 사실 명목상 베올트릭의 왕비일 뿐 실제로는 애드버가 왕(여왕) 노릇을 했음을 암시하는 기록도 있죠. 하지만 이런 애드버도 뒤를 든든히 지켜주던 오파가 죽고 형제인 에그프리트도 사라지면서 위세가 꺾입니다. 덩달아 남편 베올트릭마저 802년에 사망하게 되는데 베올트릭의 사망과 그녀가 연관이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그녀의 안위는 더욱 위태로워집니다.
    결국 그녀는 서색슨을 탈출하는데 아버지 오파가 없는 머시아로 가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유럽 대륙으로 망명을 떠납니다. 그녀의 망명지는 여느 잉글랜드 망명객들처럼 카롤루스의 궁저이었죠. 여기에서 오파 부녀의 수모 2대가 시작됩니다.
    서색슨 궁정에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카롤루스 궁정으로 망명한 그녀를 맞이한 카롤루스는 그녀에게 제안을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 클로도비쿠스(Chlodovicus, 루이 경건왕) 중 한 명을 남편으로 선택하라는 거였죠. 카롤루스는 742년생이고 클로도비쿠스는 778년생이었습니다. 애드버의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아버지 오파가 카롤루스보다 10년 정도는 연상으로 추정되는 걸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애드버는 클로도비쿠스에 좀 더 가까운 연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카롤루스는 이미 60을 넘긴 노인이었으니 당연히 애드버는 카롤루스가 아닌 클로도비쿠스가 자신을 더 오랫동안 보호해주리라 생각하고 클로도비쿠스를 선택합니다.
    이런 애드버의 선택에 카롤루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카롤루스는 그녀에게 만약 자신을 선택했다면 클로도비쿠스와 결혼을 시켰지만 아들을 선택했으니 둘 다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고르게 하지 말지. 카롤루스는 아마 애드버가 서색슨에서 여왕 노릇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테니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쥐락펴락 하리라 짐작했던 거 같습니다. 결국 카롤루스는 애드버를 한 수녀원의 원장으로 삼았는데 얼핏 보면 그녀를 어느 정도 대우한 거 같지만 뒷 이야기를 보면 그런 거 같진 않습니다. 이후 애드버는 색슨계 남성(머시아 남성이라는 얘기가 있네요)과 범죄(!)를 저질러 수녀원 사람들에게 쫓겨나게 되었고 카롤루스는 직접 명령을 내려 그녀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쫓아냅니다. 결국 그녀는 파비아에서 누추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다고 하네요.

잉글랜드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오파와 서색슨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오파의 딸, 애드버도 카롤루스 앞에서는 수모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신세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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