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우리는 허기자가 걸어온 길을 잘 아니까 응원하는 겁니다"

KakaoTalk_20190802_184512323.jpg 사진설명. 세월호 타고 제주 강정마을 가던 때 왼쪽이 허재현, 가운데가 김진혁 선배. 이전에 제주 강정마을에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행사를 응원하려고 함께 가면서 찍었던 사진입니다.

[2019년 8월2일 중독자의 회복일기]

지난달 25일 김진혁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영상원 교수(전 EBS 피디)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간 김 교수는 언론계에서 드러내놓고 "허재현 기자의 사회복귀를 응원한다"고 표명해준 거의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마약이라는 불편한 사회 문제들이 한국 사회에 뒤엉켜 있고 자칫 저를 공개 응원하는 것이 여러가지 수고로운 일들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저를 조심스러워 합니다. 물론, 저도 조심히 연락드리고 있고요. 저를 응원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 응원을 해주는 많은 언론인 동료 선후배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김진혁 선배(※언론계에선 마음이 통하면 타사여도 선후배로 부르고 지내는 문화가 있습니다)는 찾아뵈어도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많이 늦었지요.

"선배. 좀 멀쩡해졌을 때 찾아뵙고 싶었어요. 엉망 진창으로 있는 모습보다는 뭔가 다시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고 알리면서 찾아뵈면 면목이 설 것 같아서 … ”
"그래요. 허 기자가 이렇게 보란듯이 일어서줘서 정말 보기 좋아요. 사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회복해내는 것 같아, 이 친구 가진 잠재력이 훨씬 더 컸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김 선배에게 물어봤습니다.

"선배는 저 공개적으로 응원하는 거 괜찮았어요?"
"허 기자가 그간 기자로서 보여준 모습을 저는 봐왔으니까요."

이렇게 쿨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 선배는 그냥 시원시원 간단하게 답합니다.

김 선배와 알고 지낸지는 7년여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노종면 선배를 중심으로 뭉친 '시끄러운 언론인' 들의 조용한 모임같은 게 있는데 거기를 통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뭐 서로 회사는 달라도 각자 하는 일을 응원하고 1년에 두세차례 보면 반갑게 밥먹고 술먹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김 선배는 EBS를 그만 두고, 저는 한겨레 다니다가 마약사건 터지고 한겨레를 나왔지요. 먼저 연락 드리기엔 너무나 부끄러웠는데 김 선배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응원 문자만 다섯 차례 이상 보내주면서 계속 힘을 주셨습니다.

이미 개인적으로는 다 말씀 드렸지만, 다시 한번 제가 왜 마약에 노출되게 되었는지 김 선배께 설명을 드렸습니다.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한 친구를 알게 됐고, 그 친구가 중독자임을 알게 됐고, 그와 헤어지는게 죄스러웠고, 그의 치료를 돕겠다고 약속했고, 그러다 그만 저도 마약을 하게 됐다는 그 과정들을요. 김 선배는 다시 한번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요. 허 기자 인간됨의 결이 중독자인 친구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다큐를 만든다면, 허 기자가 이렇게 훌륭하게 회복해가는 과정을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예요. 허 기자가 겪는 일은 한국 사회에 아주 의미가 크니까 꼭 힘을 내요."

사실 김진혁 선배가 없었다면, 저는 아무리 1인미디어라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언론계에 복귀가 어려웠을 겁니다. 언론계에 어느 정도 위치와 영향력을 갖고 있는 단 한 명이라도 나서서 '허재현을 다시 받아줍시다' 했기에,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김진혁 선배에게는 제가 평생 감사드려야 할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의 많은 구성원들도 제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허재현이라는 마약 전과자를 섣불리 응원하면 또 한겨레를 공격할 빌미만 찾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 있어 공개적인 응원은 못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가족같은 분들에게 죄스럽고 죄송하기만 합니다. 열심히 좋은 기사 써서, 한겨레 출신인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임을 보여드리는 게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마약일기와 더불어 회복일기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마약일기는 지난 1년간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지, 회복일기는 어떻게 잘 회복해내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중독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어떤 응원을 해주면 잘 회복해내는지 우리 사회에 보여주고 싶어 진행하는 것들입니다.

오늘은 제가 언론계에서 어떻게 기자로서 회복해 가고 있는지 기록했습니다. <리포액트>(http://repoact.com)라는 탐사보도매체의 기자로 복귀한지 이제 한달입니다. 후원금도 한달새 150만원이나 모였고, 정기후원회원 가입문의도 30여건 이상 와 있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다시 기자로 돌아와줘서 반갑다'는 응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도 나중에 김진혁 선배처럼 넘어진 후배에게 다가가 먼저 손내밀어 일으켜주는 언론인으로 커가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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