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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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저는 마약을 했던 기자입니다. 마약을 했던 당시 한겨레신문의 기자였고 경찰청 출입을 하던 기자였습니다. 경찰에 입건된 뒤 형사처벌을 받았고, 처벌을 받기 전 신문사에서 해고됐습니다.

많은 분들은 제가 한겨레신문에서 쌓아온 명예와 성과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 해주었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앞으로 부모님을 제가 어떻게 봉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큰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처분으로, 제가 사회에 계속 몸담아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해준 사법부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준법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기자가 마약을 할 수 있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고 저 스스로도 자책하는 바입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저의 엄격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평생 반성하고 자숙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프랑스의 여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내 몸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마약투약을 처벌하는 국가에 항변했고 저도 그러한 주장에 기대어볼 생각을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기자라는 직업인이 가져야 할 엄중한 도덕적 책임들에 비춰봤을 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항변은 아직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다만, 저는 마약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 각각의 사정과 판단을 존중하며 그들이 필요 이상의 불합리한 처분과 혐오에 상처입지 않도록 연대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차차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마약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아픈이’들이 많습니다. 저역시 그러했고요.

제가 경찰에 입건된 날은 2018년 5월1일이었습니다. 지난 1년여간 저는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 1년여간 최대한 저의 일상을 기록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가 부닥치는 일들을 기록하여 평생 마약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회복의 주춧돌'로 삼으려는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를 차분히 돌아보게 하는 이 소중하고 아픈 기록을 저는 평생 살펴볼 생각입니다.

한데 기록을 하면 할수록 제게는 또다른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마약 사용자로서, 아니 마약 사용자임이 의도치않게 아웃팅 되어버린 사람으로서, 오늘날 겪고 고민하는 모든 것들이 저 개인만의 것으로 소비되어선 안되지 않나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마약은 금기어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마약을 금기시하는지 정확한 원인은 좀더 분석해야 합니다. 다만, 국가가 불법화 했으니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을 한 사람들은 역시 나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가 해온 고민의 전부입니다. 마약은 나쁜 것이 맞습니다. 간단합니다. 몸에 나쁘기 때문이지요. 마약의 끝은 늘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마약은 안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됩니다. ‘마약은 나쁜 것이지만, 마약을 한 사람도 과연 나쁜 사람들인가? 마약은 퇴치 대상이지만 마약을 한 사람도 퇴치 대상인가?’

저는 한순간 퇴치의 대상이 되어 쫓겨나듯 회사를 나왔습니다. 저는 제가 형사적 책임을 치르는 과정에서 조금도 억울함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허재현이라는 인격체가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오물덩어리로 비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마약을 했고 그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았다. 내 커다란 실수에 책임을 지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평생 오물덩어리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허재현이라는 기자는 이미 모래 속의 진주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래사장에 널려있는 진주조개 외 모든 자연의 물질들이 쓰레기처럼 취급받아선 안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 사건에서 시작된 이 고민들은 점차 주변의 평범한 마약투약자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우연한 계기로 마약에 노출되는 경험을 가졌지만 제 주변에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중독자들과 어울려서는 안된다는 제 방어심리 때문에 중독자들을 멀리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독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독자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회복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많은 고통을 삼키며 말없이 살아가는지 알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 처벌 일변도의 마약 정책은 중독자들의 회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추측해봅니다. 우리 사회의 마약과 마약에 대한 과도한 혐오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우리는 마약을 잘 모르지만 마약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1년여 생각을 한 끝에 찾은 결론은, 마약을 한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약투약은 범죄입니다. 당연히 마약을 한 사람들은 범법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마약 투약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마약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과도한 처분과 모욕을 받아도 그저 침묵하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빨리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만이 마약 중독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입니다.

우리 사회의 마약 관련 법과 제도 문화는 모두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적용되어 왔습니다. 마약 정책의 수립에 정작 마약중독자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이즈 예방 정책에 에이즈 환자의 목소리가 없고, 장애인 차별방지 대책에 장애인의 목소리가 없다면, 이상하게 비칠 것입니다. 그러나 마약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마약 중독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어도 우리 사회는 한번도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의문을 품습니다. ‘이게 과연 최선인가?’

그래서 저는 시작하려 합니다. 마약 중독자로서, 마약을 경험해본 기자로서 마약이란 무엇이고 마약을 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마약을 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마약 중독자와 우리 사회가 함께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고민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려 합니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마약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수십년전 상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년여간 써왔던 저의 일기를 공개합니다. 제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결코 긍정적으로 포장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 제 개인적 경험이 올바른 마약정책의 수립을 위한 공공재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혜량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저의 연재글의 취지에 공감하고 열심히 응원해달라는 부탁 또한 드리겠습니다. 염치없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가 잘 회복해야만 우리 사회의 소금같은 저널리스트로서 계속 활동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받은 은혜와 응원은 제가 건강하게 사회에 다시 복귀하게 된 때 적절하게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5월13일
허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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