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중독자 문제 취재를 거절했던 나를, 그 인권운동가는 지금 비웃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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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마약중독자를 단속하면서 그의 삶을 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망치고 있다.

#2018년 5월28일 (월)

한국 앰네스티에서 일하시던 분이 밥을 사겠다고 연락해왔다. 내 사연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해주고 있다. 앰네스티 본부가 마약 사용자에 대한 여러 문제를 주요 인권 의제로 선정하는 문제를 놓고 내부 토론에 들어갈거라고 한다. 이미 해외 인권 선진국의 시민 단체들은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를 이슈화 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마약중독자와 인권은 어울리는 말인가? 그 사람들은 범죄자 아닌가. 자숙해도 시원찮을 사람들이 인권을 이야기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사실 내 생각도 여기에 가까웠다. 아니, 가깝다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지난해 가을쯤 한 인권운동가가 내게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의 수사관행이 문제가 많은데 경찰청 출입기자인 내가 취재좀 해야 하지 않냐고 설득한 적 있었다. 특히 경찰들이 동성애자를 상대로 표적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취재를 거절했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인권문제를 논하기에는 좀 좋지 않은 소재같습니다.”

마약을 안하면 되지, 왜 국가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해놓고 경찰이 표적 수사를 한다고 문제 삼는 기사를 써달라는 것인가. 다만 경찰이 동성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 이름까지 적시한 보도자료로 배포한다고 하길래 그거는 부적절한 것 같아 서울경찰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지 말라고 충고해주는 것까지만 내가 도왔다.

그 인권운동가는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런 대화를 나눈지 불과 몇 개월만에 나는 마약을 접했고, 함정수사를 겪었고, 아웃팅 당했고, 신속하게 해고 당했다. 도움을 거절하더니 샘통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또한명의 중독자의 삶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까. 아직까지 내게 연락은 없다.

경찰이 마약중독자들의 투약 욕구를 자꾸 자극하면서 함정수사를 하는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경찰이 마약 같이하자고 꾀어내면 대체 어떡하나. 내가 겪어보니 중독은 스스로 통제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떻게 보면 간신히 하루하루 버텨내는 전쟁터 속의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마약 같이 하자고 계속 꾀어냈던게 경찰이었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 경찰이 계속 돈 안받을테니 마약하자고 꾀어내어서 내가 시달리다 못해 모텔로 걸어가지 않았나.

가끔 언론보도에 ‘경찰이 마약하자고 꾀어내지만 않았다면 현장에 안나갔을 거’라며 무죄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나오곤 했다. 그들이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 대충 그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엄청난 노력으로 간신히 마약에 대한 욕구를 참고 있는 사람의 속마음에 접근해 부푼 풍선에 바늘을 꼽는 것처럼 빵하고 터뜨리는게 경찰의 수사방식이었구나. 자기들 수사 건수 하나 올리기 위해 중독자들을 이렇게 괴롭혀도 된다는 건가. 이제 인권침해라는 주장에 동의가 된다. 겪어보니 그렇다.

앰네스티에 계셨던 분은 나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영국 왕실에서 운영하는 쉐브닝 장학금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영국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서 인권 관련 전공을 쌓아보면 어떠냐고 권해주었다. 추천서만 잘 받으면 나 정도면 충분히 그 대상자가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래. 이참에 인권운동의 길에 들어서볼까. 한국의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지 취재하고 바람직한 제도를 만들어볼까. 한국에서 마약을 체험해본 기자는 나밖에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제일 이 분야를 잘 취재하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이런 가시밭길을 걷게 된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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