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바 에세이] 늦었지만 생애 첫 출근 날 -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의 의미.

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다. 이미 2달여 전, [일기] 첫 출근의 기록 - 환영 받는 분위기에서 시작한 첫 출근
라는 글에서 첫출근을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앞선 1, 2월의 두 달은 교육 기간이었다. 주 3일 출근을 했고, 이런 저런 내용들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어떤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어제부터 정식 출근하게 될 내 직장은 일을 하기 전 정말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한다. 대학교4년, 대학원3년 동안 이 일을 위해 공부해왔지만 막상 직장에 들어오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비록 2달여간의 기간이 무급이었고, 나름 일이랄 법한 것도 하긴 했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다. 필요한 교육을 받은 것이기도 했고, 이런 무급 교육 기간에 대한 보상도 나름 약속을 받았다. 같은 분야의 다른 수련기관에 비했을 때, 나의 수련기관은 노동과 관련된 면에서 나름 철저하다. 물론 야근 수당과 주말출근 수당은 없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 당연히 쓰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분야의 수련생들은 근로계약서 없이 최저임금도 못받는 경우가 꽤나 많다.

최근 보도된 석사학벌=최저임금…정신건강임상심리사 수련생 최악의 처우라는 기사만 봐도 우리 분야의 수련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우에서 일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제서라도 거대 언론 매체에 소개된다는 것이 희망적이긴 하나, 앞으로 갈길이 먼 듯 하다.

어찌됐든 오늘의 글은 이러한 불합리한 체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애 첫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일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삶의 역사에 있어, 금전을 생산해내는 노동 행위는 거의 없었다. 항상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알바 같은 것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하셨다. 이 말만 보면 우리 집이 상당히 넉넉한 것으로 착각 할 수 있지만, 대학 등록금을 모두 대출 받아서 다녀야했을 정도로 우리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리 부지런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 듣지도 않던 어머니 말을 이럴 땐 정말 잘 들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알바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부채감 때문에 처음 했던 도서관 알바는 1년간 거의 풀타임으로 했지만 국가근로장학이었기 때문에 따로 계약서를 쓰진 않았고, 서약서 정도 썼던 것 같다. 그래도 2014년 당시 시급 9500원으로 지금 시급보다도 2000원 가량 높은 금액을 받았으니 딱히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여튼 이번의 취직으로 돌아와서, 이미 두 달 간 출근했지만, 교육생이란 이유로 많은 의무들을 탕감받았다. 3.1절 하루를 쉬고 3월 2일 부터 본격적으로 출근을 시작하니, 고작 이틀전이었을 뿐인데 교육 기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당장 월요일부터 해야할 행정업무들에 대해 인수인계 받고, 할당 받은 심리검사를 오전 오후 종일 받았다. 그리고 오후 중간 쉬는 시간에는 인사과에 올라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거창한걸 기대한 것으 아니지만, 생애 첫 근로계약서의 작성은 생각보다도 정말 별게 없었다. 그저 종이쪼가리 몇 개에 오늘의 날짜와 내 이름, 그리고 내 계좌번호를 적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종이에는 나의 직위, 내가 지켜야할 일들, 내가 받을 대우들이 적혀있었고, 가장 중요한 내 봉급이 적혀있었다. 앞으로 3년간 이 병원에서 일하게 되는데, 1년차 때 월급은 완전한 최저시급이었다. 그래도 올해부터 최저시급이 꽤나 올라 내 생각보단 많은 금액을 받게 되어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한편으론 최저시급에도 감사하는 이 상황이 묘하게 씁쓸하기도 했다.

뭐 야근도 하고 퇴근후에 집에서 할 일도 많지만, 이런 것들이 포함되있지 않은 임금이지만, 그러함에도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은 중요하다. 근로계약서는 근로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퇴사한 이후에도 크게 작용한다.

나도 노동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무리 같은 기간 같은 돈을 받고 일을 했다하더라도 근로계약서가 없는 사람은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으며,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노동을 하고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우리 분야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최근 지인은 수련과정이 아닌 정규직으로 취업을 헀음에도 반년 동안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채 현재 퇴사준비를 하고 있다.

사소한 종이쪼가리 몇장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근로계약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하루 일을 하더라도, 몇십년을 일하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자신이 일한 만큼의 돈을 받고 자신의 가치를 낮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사소한 것들의 변화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이 배웠으니, 앞으로 반드시 변화가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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