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일기/2018.03.24] 첫 월급을 받다 - 심리학 전공을 살려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하여

2018년 3월 23일, 내 인생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 끝나고 맡겨놓은 핸드폰을 찾으니 생애 첫 월급이 통장에 들어와있었다. 사실 월급이 들어오기 전 신용카드를 만들어 이것저것 긁어놨기 때문에 이 월급은 내 온전한 월급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30일 간의 노동이 7자리 수의 돈이 되어 통장에 꽂히는 것을 목격하는 광경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스팀잇으로 이미 현재 연봉을 뛰어넘는 돈을 벌어놓은 상태지만(현재 연봉이 참 적다... ㅋㅋㅋ) 노동을 해서 돈을 번 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안정감을 제공하는 듯 하다.

특히 이 쥐꼬리만한 월급이 더 의미있게 느껴졌던 것은, 심리학 전공을 살려 번 돈이기 때문이다. 학부에서만 심리학을 전공해 심리학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도 임상심리학 분야에서는 전문가 수련 과정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다른 직업으로 전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른 한편 서글픔도 느껴졌다. 아직 수련과정이긴 하지만, 주 5일 하루 8시간 정규 근무 이외에도 하루 4~7시간의 야근을 거의 빠짐없이 해도, 야근 수당은 기대도 못하는 상황에 월급은 최저시급에 딱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자격을 따고 나면 사정이 조금 나아지겠지만, 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투자비용이 흑자로 돌아서는데 20년은 걸릴 듯 싶다.

내가 임상심리사의 월급을 처음 인지한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대학 커리어센터 테이블에서였다. 어차피 내 진로는 확고했기에 딱히 진로에 관심이 있어서 간건 아니었고, 공용 테이블이 있어 스터디를 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커리어센터랍시고 테이블에 얹어진 유리 밑에 각 직업별 초임 직원의 평균 수입 표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임상심리사가 마이너 중의 마이너 직업이라 표에 없을 확률이 높았지만 혹시나 하고 봤더니 끝트머리에 떡하니 적혀있었다. 적혀있던 평균 월급은 170만원이었다. 170만원... 물론 9년전이기 때문에 지금보단 높은 금액일테지만, 당시에도 적은 돈이긴 했나보다. 돈에 큰 욕심이 없는(?) 내가 경악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의 초임은 250만원 정도 될까. 사실 이 월급이 상대적으로 봤을 때 문과 직업 초임 치고는 그리 적은 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상심리사의 경우 대학입학 후 10년의 훈련 기간의 공부가 필요하고, 심지어 시험을 통과하지 않느다면 수련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중간 중간 들어가는 비용은 대우에 비해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할만 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이 호봉제가 아니기 때문에 연봉을 올리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규직보다 여러 정신과 의원이나 심리상담센터에서 잠깐 출근해 검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로컬 활동이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실정이다.

혹자들은 심리학자들의 보수에 대해 이야기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아니 심리학 한다는 사람이 왜이렇게 돈을 밝혀? 돈 벌려고 하는 직업 아니잖아.' 이런 반응을 듣게 되면 아연질색하게된다. 세상에 일을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돈이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3평짜리 방에 살며 삼시세끼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이 과연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가난은 학문적으로도 인간의 삶의질과 정신병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면 과연 남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내 분야에 대해서만 투덜대긴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후진국 수준인 듯 하다. 토요일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수당도 받지 못한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기본이고, 칼퇴근은 비판받는다. 최저시급이 올랐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학교 학자금과 자취방 월세를 내기에 급급해하며 살고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으며 꿈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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