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만복사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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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지라는 절터 답사기입니다.
남원시내에서 곡성방향으로 구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시내를 벗어날 때 쯤 만나게 되는 절터인데 예전에는 규모가 굉장히 큰 절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금오신화라는 소설을 짓고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시습이 '만복사 저포기'라는 한문소설을 남겨 한문 소설의 시작이 되고 이 소설을 통해 당시 만복사의 실상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만복사의 의승병들이 왜군에 강하게 저항하자 재 침략한 왜군이 만복사를 불태워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이런 연유로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복사 저포기>는 남원사는 양생이라는 노총각이 임진왜란 때 정절을 지키다 죽은 처녀의 환신과 사랑을 나누다가 처녀환신이 떠나버리자 약초를 캐면서 여생을 혼자 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때 세워진 사찰인데 처음 지었을 때 경내에는 동으로 만든 거대한 불상을 모신 이층법당과 오층목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변의 옛 이름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백뜰이라는 지명은 만복사 앞 제방을 말하는데 스님들이 빨래를 널면 온통 하얗다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썩은 밥배미는 절에서 나온 음식물을 처리하는 장소로 그만큼 스님들의 숫자가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는 지명입니다. 또 남원8경 중 '만복사 귀승'이 있는데 저녁 나절 탁발 나갔다 돌아오는 만복사 스님들의 행렬이 실로 장관을 이루었다는 것에서 남원8경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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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곳곳에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당시 만복사의 규모와 전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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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이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계단인데 목탑지의 크기로 보아 대단한 목탑이 서 있었던것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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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높다란 좌대만 남아 있는데 이 위에 커다란 석불 좌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보물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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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 석탑인데 고려시대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보물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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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괘불을 걸어놓는 당간을 지지하는 당간지주입니다 (보물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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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각 안에 있는 석불입상입니다. 뒷 배경인 광배 조각이 매우 섬세합니다.(보물 43호)

이밖에도 많은 아름다운 석조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운데 서있는 석인상은 본래 만복사에 있던것이 아니고 십리쯤 떨어진 길가에 세워진 1쌍중 하나인데 사고위험이 있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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