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by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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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그의 삶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그의 나이 19세에, 16세의 아내와 결혼해 인생의 아주 이른 시기에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극심한 생활고에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야간 대학에서 문학강좌를 듣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 어린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주차된 트럭 안에서 글을 쓰는 일이 다반사였고 고된 노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문학으로의 열정이 뒤얽힌 그의 삶은 아내와의 기나긴 불화로 이어진다.

그의 삶에 대한 무거운 인내는 그를 알콜 중독자가 되게 하고 긴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하고 술을 끊고 아내와 이혼한 후,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떨칠 무렵, 50세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밀린쿤데라'의 소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글이라 생각하면서도, 카버의 글은 사람들이 쉽게, 어쩌면 나도 저런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나역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설들은 엄청나게 스펙타클 하다거나 이야기성이 풍부해서 독자들에게 깊은 상상력을 요하지도 않고, 지금 책을 덮어도 뒤에 무슨일이 이어질까 궁금해서 얼른 다시 집어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하지도 않는다.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의 삶에 관계한다. 실제로 작가가 살았고 지나온 곳을 소재로 글을 쓰고, 그가 경험한 삶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하듯 써내려간다. 유독 그의 작품에는 소시민적인 감성이 많이 엿보인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현실에 그럭저럭 순응하며 살아가고, 가족은 해체되고, 그 안에서도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 글의 표제작인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 하는 것'은 작가의 사랑에 대한 담론에 가까운 작품이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를 구속하고 얽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카버는 네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어떠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를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네 사람은 모두 이미 한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새로운 상대를 만난 사람들이다.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들을 저버리고 증오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난 이들이 지금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서 예전의 사랑은 기만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소설집 [대성당] 두 해 전에 출간되었다. [대성당] 속 내 스스로 아주 감동적이었던 작품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의 손보기 전 단계격인 '목욕'을 만나면 기쁨을 감출 수가 없기도 하다. [대성당]이 잘 다듬어져서 매끈한 실루엣을 자랑한다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투박함 속에 숨겨진 작가의 진정성과 순수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지만 '심리'는 약하고 '현상'과 '행위'는 강한 작품들, '이해'와 '추론' 보다는 '사실'에 입각해 나아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치 생선에 살은 없어 뼈대만 남아있어서 독자들이 읽어가며 그 살 부위를 채워나가야 할것같은 이야기들이다. 즉, 성실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책이다. 예를 들어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 '어떻게'를 가지고 '왜'를 찾아나가는 식의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단편 중에서도 초단편 격의 작품들이 여러편 모여 그닥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읽는 내내 약간의 피로가 밀려온다.

국내에서 번역을 직접 하는 유명 작가를 이야기할 때 김영하 작가와 김연수 작가를 빼놓을 수 없는데, [대성당]을 번역했던 김연수 작가가 얼마나 [대성당]을 더 빛나게 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작가가 번역하는 작품은 일단은 이야기성이 그대로 보존되기 마련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팬이지만 번역 때문에 약간 거슬리는 작품이긴 하다.

국내에선 '숏 컷'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로 거의 알려졌었고, 이미 유명해진 다음에도 영화 '버드맨'에서 마이클 키튼의 연극무대에서 시연되던 작품의 원작자로 더욱 알려진 레이먼드 카버. 그의 군살없는 미니멀리즘적인 작품들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으나 가슴 깊숙하게 명징하게 남는, 그 어떤 감동이 오래가는 작품들이다.

레이먼드카버의 카버적인, 카버를 기억하기에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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