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30대 남자의 이야기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남자이다.

부모님은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오셨지만, 당대의 많은 어른들이 그랬든 열심히 일해서 중산층의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나도 덕분에 엘리트 유학까지는 아녀도 한국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주입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보수적인 가풍에, 맏이로 태어나 항상 부모님의 인정을 받는 고분고분한 모범생처럼 지내왔다.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나, 대외적으로는 리더십 있고 쾌활하며 사교적이라고 노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천성이 아니기 때문에 후자의 캐릭터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렸을 때 나는 버릇이 있었다.
아랫입술을 빨며 머리를 꼬는 버릇이었다.
동생도 비슷한 버릇이 있었는데, (인종차별적인 의도는 없지만) '깜둥이' 아저씨가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하얀 거짓말에 넘어가 금방 버릇을 고쳤다.

하지만 나는 쉽게 믿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때까지 이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이 때 '나'란 놈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변화하려면 그 '변화'에 대해 굳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체가 되는 자신에 대해서도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매일밤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싱가폴에서 심리학 특강을 들었었던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자기 최면 시간에 남들은 쉽게 빠져드는 최면에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였을까.

'나'란 놈으로 태어난 것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어 세상이라도 바꿀 줄 알았지만 결국 나 하나 바꾸기에도 버거운 현실에 놓여 있음을 30대가 꺾이는 나이가 되어 깨달았다.

그리고 아쉬움을 넘어 두려웠다.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닥치고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족하다고 스스로를 타일러 보지만,
마음 한 켠은 여전히 공허하다.

이 세상을 사는 의미란 무엇일까.
그 질문에서 시작해본다.

한삼남은
스스로를 잘났다고 믿고 pride를 가지고 살아온 '핸섬남(handsome남)'이었지만
30대에 접어들며 뭐든 적당히만 하는 사뭇 별 볼 일 없어진 현실에 찌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 '한심남(한심한 남자)'이기도 하다.

평소에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기 어려웠던 '한국에 사는 30대 남자, 한삼남의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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