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바르다의 시선

영화에서 시선은 반드시 무거워야할 필요는 없다. 현실 속 고민거리는 바르다의 영화에서 결코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의 고유한 장치(카메라, 스크린, 영사기 등)를 가지고 유희하기, 그것은 그의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다. 사적인 일기, 추억처럼 들리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이야기된다. 주로 사람들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아이들 놀이 같은 작은 행위들 속에서 진실을 발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주로 다루는 그의 영화속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냉철하고도 따스하다. 관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서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다니며 영화를 만들기는 그녀의 삶이 소박하기에 아름답다.
바르다는 201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꾸준히 이룬 업적을 미국에서 처음 인정받은 것이다. 50년대 누벨 바그 운동의 출발점은 그를 비롯한 알렝 레네, 장-뤽 고다르같은 영화감독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교류하고 저예산으로 많은 영화들을 만들어 냈다. 스물 여섯에 만든 <라 뽀엥뜨 꾸르뜨>(1954)는 누벨 바그의 시발점이 되는 영화다. 실제 지명인 ‘뽀엥뜨 꾸르뜨’는 작은 송곳이라는 이름으로 바르다가 중학교를 다녔던 프랑스 남부해안지방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누벨 바그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영화만들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사실 이 말은 그녀를 띄워주기 위한 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바르다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감독들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필모그래피에서 장편 영화들의 수는 오십편 가까이에 이른다. 영화의 수가 많다고 해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과 완성도를 잃는 것은 아니다. 미국, 쿠바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민족지 테마의 사진들은 영화속에 간간히 삽입되고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과거를 회상한다. 사진과 영화들 중에서 여성은 단연 화두다.
임신한 어떤 여성의 시선을 통해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담은 단편영화 <오페라 무프>(1958),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같이 여성은 그의 영화에서 세상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시선의 주체로 나온다. 여러 장소들을 연속해서 이동하는 방식은 소소한 사유를 일으킨다. 영화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결론으로 이른다. 점쟁이로부터 중병에 걸릴 것이라는 악담을 들은 가수 클레오가 '5시에서 7시’ 사이 파리 시내 산책하기를 통해 삶의 공허를 견디고 생기를 회복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는 사실상 클레오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시선만을 나타낸다. 그녀는 점장이 말을 계기로 죽음보다 삶을 사유하게 된다. 집, 친구의 아뜰리에, 그리고 거리를 지나, 카페를 거쳐서 리볼리, 퐁 네프, 생 제르망, 몽파르나스, 몽수리 등 이곳 저곳을 무작위로 돌아 다니면서 그녀는 삶의 폭력성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말에서 버스안에서 알제리에서 온 군인을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고 삶으로 되돌아 가는 버스 장면은 감동적이다. 클레오는 더 이상 조금전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있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이전의 그녀가 아닌 것이다. 결말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은 그녀가 산책하기 과정를 거치면서 살아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은 이후에 찾아온 것이다.

"논문을 마무리하며 한 해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하나하나 마무리짓는 한 해가 되고자 합니다.
블로그에 방문해 주신 분들의 새해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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