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리뷰]좀비 영화의 불모지에서 시도된 좀비영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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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두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창조해낸 세계는 하나같이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다(두 편 사이에 찍은 단편 <창>(2012)의 배경인 군대 또한 마찬가지다). <돼지의 왕>에서 빈부격차 때문에 생긴 학급 계급 구조는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었고(밝게 자라나야할 아이들의 학교가 철저하게 계급으로 구분된 사회라는 발상이 꽤 섬뜩하지 않은가), <사이비>의 배경인, 수몰 지역으로 지정된 시골 마을에 들어온 인간(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과 노름과 싸움을 일삼는 마을 폭력배 김민철)들은 죄다 나쁜 놈이다.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어떤 지옥도로 그려낼지 궁금했던 것도 이제껏 보여준 출구 없는 세계관에 거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살아있는 시체가 득실거리는 <부산행>의 KTX는 한 줌의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고속열차다. 또 하나, (정작 감독은 자신이 애니메이션 작가이기에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돼지의 왕>은 굳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로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부산행>의 재앙은 좀비를 만드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시작된다. 회사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한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의 생일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별거 중인 아내가 있는 부산행 KTX를 탄다. 별별 사람이 다 타는 열차답게 석우와 수안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옆을 항상 지키는 상화(마동석), 대학교 야구팀 선수 영국(최우식)과 그를 좋아하는 야구팀 치어리더 진희(안소희), 이기적인 고속버스 회사 사장 용석(김의성)이 그들이다. 서울역을 막 떠난 열차는 좀비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이 재앙을 열차 안에서 뉴스를 통해 접한 사람들은 찰거머리처럼 붙어 날카로운 이빨로 단숨에 사람을 죽이는 좀비들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칸으로 도망친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는 없다.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거대한 지옥도가 펼쳐진다.
좀비 장르의 불모지인 충무로에서 좀비 영화가 시도됐다는 게 대담하면서도 반갑다. 조지 로메로의 걸작 <시체들의 새벽>(1978)부터 대니 보일의 <28일 후…>(2002),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2004)를 거쳐 최근의 <월드워 Z>(2012, 마크 포스터)까지 해외 좀비 영화들을 보면서 양가감정을 가져왔던 게 사실이다. 재빠른 속도로 인간을 쫓아다니는 좀비들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다가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배경이 아니다보니 그 공포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좀비영화로서 <부산행>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실감나게 펼쳐낸다. 쉴 새 없이 쫓아오는 살아있는 시체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극단적으로 나뉘는데, 어떤 캐릭터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도하고, 또 어떤 인물은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또, 기차영화로서 <부산행>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질주하는 KTX와 꼭 닮았다(특히 후반부에 플래시백을 통한 구구절절한 사연 타령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열차 안에서만 사건이 벌어지는 기차 영화 <설국열차>(2013, 감독 봉준호)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다. 꼬리칸에서 머리칸까지 이동하면서 열차 내 계급의 구분을 공고하게 했던 <설국열차>와 달리 <부산행>의 등장인물들은 좀비가 있는 칸에서 없는 칸으로 도망친다. 그때 정부는 방송을 통해 “잘 대응하고 수습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전하고, 주인공 석우가 “사람들을 다 구할 수도 있었잖아요”라고 분노할 때 이 영화는 4월16일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모든 등장인물이 재미있게 묘사되지만, 그중에서도 마동석이 연기한 조연 상화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다. 주인공 석우를 포함한 영화 속 인물 대부분 이기적이지만, 상화는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강조한다. 외모는 터프하고, 거칠지만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유순한 남자, 아내가 도와달라고 사인을 보내면, 헤라클래스 같은 힘으로 좀비를 거침없이 제압하는 남자다. 그래서 <트위치필름>은 “영화를 보면 마동석이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것”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역시 그 의견에 동감한다. <부산행>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부문에 초청됐다.
김성훈

*이글은 2016년 <타임아웃 서울>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부산행> : https://www.themoviedb.org/movie/396535?language=en-US
*평점 :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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