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평론] <옥자>

<옥자>. 디지털 기술의 이중적 분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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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옥자>시작에서 미란도 사 대표 루시가 기자들과 관중들 앞에서 수퍼돼지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인류의 식량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유전자 복제 조작 기술의 활용은 수퍼 돼지들이라는 인공물을 창조해낸다. 기업의 중장기 기획의 일환으로서 전세계 국가들로 쉽게 침투한 것으로 간주되는 거대 기술의 한 양태는 작금의 시점에서는 어떤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러나 봉준호는 이러한 억지스러운 설정을 끝내 감행한다. 여기에서 일종의 들뢰즈의 거짓의 역량 개념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전자 복제로 식량문제를 해결한다는 허구적 사실을 고안해내고 어떤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그것 자체를 사실화하는 것. 그것은 픽션이라는 형식적 틀 속에서 정당성을 보호받음을 알고 실행한 거짓이다.
감독 자신이 의혹을 가졌던 식량, 유전자 조작 과학 분야의 뒤틀린 윤리에 대해서 언급하려한 것이다. 문제제기는 나아가 미국 다국적 기업이 어떻게 세계 각국의 생태계를 망쳐놓았는지를 고발한다. 미란도사가 홍보와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서 전세계 농가에 수퍼 돼지를 분산적으로 양육하게 하는 방식은 실상 미국이 타국이 자국 문화에 길들여지게 해온 방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봉준호가 이처럼 영화 속에서 미국을 타자로 대상화하고 계속해서 매스를 들이대는 방식은 다소 황당무계해 보이기조차하다.그는 지나치게 과장해서 현실을 희화하하기를 좋아하는짖궃은 이야기꾼같아 보인다.
어쨌든 옥자의 내러티브에서 우리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어떻게 한국 농촌 일가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대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미디어가 지어내는 허상에 대한 조소 내지는 관찰자적인 시점이다. 봉준호가 미디어의 효과를 풍자하는 방식은 코미디적인 특성을 통해서 일견 아무런 위협도 없이 단순하게 풍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국 옥자와 미자를 갈라놓은 미국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알리고 홍보한 장보인도 미디어 주체들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러한 풍자가 실은 날카로운 면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 3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는 기술을 통해 전격화되고 이는 우리가 보기에는 일견 합리적이고 선진 기술이라고 간주되는 기이한 유전자 조각에 대해 아무 거부감도 가지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맹목적으로 이를 실행한 구세대에 대한 비판적 시점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미국의 신식민 지배 체제는 더 이상 타국의 국민의 노동을 강제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 미국은 자신의 기술력을 단지 전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3세계 국가들의 호감을 얻어내는 방안을 터득한 듯하다.
미국에 저항하는 정서는 봉준호 영화에서 팽배하게 나타나지만 중요한 것은 그조차 미국의 디지털 기술에 동조하면서 넷플리스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오늘날 한국 영화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옥자는 금지된 유전자 조작법을 위반하면서 만들어낸 인공적으로 조작된 교배종으로서 겉보기에는 인류의 식문화와 식량 문제의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나 실은 기업의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가 탄생시킨 반자연적 존재다. 대기업의 기획으로 전세계 농가에 수퍼돼지를 분양해서 지역에 가장 적합한 양육 방식을 모색하려는 전략은 십년 후 본국으로 샘플들인 수퍼 돼지들을 소환하게 된다. 뉴욕, 서울 등 도시와 산골 농촌을 오가며 옥자를 되찾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자의 노력은 오늘날 기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탈식민주의의 양상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사적인 관점에서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탈식민주의 뿐만 아니라 해방 후 미군정 주둔을 비롯해 식민주의 정책의 실행은 군사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이라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체제를 전파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오늘날 미국이 개발한 과학 기술의 테크놀로지가 각국의 생태학적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은 각국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에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 제체에 적응하도록 요구하는 신식민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민족 감정의 차원에서 강대국의 기술은 신식민주의, 혹은 신제국주의의 또 다른 방편으로서 간주된다할 때 오프닝에서 나오는 루시의 연설장면과 뒤따르는 강원도 산골에서 평화롭게 자란 옥자와 그를 돌보는 미자의 서로 공생하는 모습은 식민성에 대한 사유를 불러 일으킨다.
과거 일제 식민지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기는 하였으나 미국의 경제, 군사적 보호와 압제는 동시에 한국의 자생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 공존하는 옥자의 가상 이미지와 미자의 실제 이미지는 미국의 기술이 가진 이중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가상 이미지로서 가상 배우가 상상적 대상을 재현해내는 방식은 일종의 그로테크스한 느낌을 주면서 실제의 이면으로서 가상적 존재에 대해 상기한다. 미국이 불러들인 비극적 상황으로서 옥자와의 이별은 미자를 단호하게 행동하게 하고 이러한 가상과 현실태의 상호작용은 디지털 기술이 현재를 상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상 캐릭터 옥자는 반제국주의, 혹은 반식민주의적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무엇이기 보다는 미국의 보호 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과 미국의 앞선 과학 기술에 대한 선호라는 식민적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반면 옥자는 미국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력에 대해 강한 동경심을 가지고 이를 도입하고자 했던 한국영화 산업계의 양가 감정을 알레고리로 풍자하고 있다. 거대 자본과 노동력의 집약으로 이루어진 특수효과 기술은 디지털 시대 영화를 산업으로 재도약시키려는 할리우드의 필요에 부합하는 방편이었다. 아날로그 시대 특수효과 기술을 부흥시키고자 했던 할리우드는 뉴 할리우드기 이후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면서 강화된 스펙터클성을 창조해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 산업계도 그러한 흐름에 부응하면서 미국의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 호감을 나타내왔으며 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 첨단 기술력은 관객의 어트랙션을 위한 첨병으로 간주되고 대형 멀티 플렉스가 대중을 끌어들이는 장치로서 도시 곳곳에 속속들이 들어서고 디지털 스펙터클은 하나의 마케팅의 수단으로서 전략적으로 활용됐다.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로부터 영화 제작비를 지원받아서 <옥자>를 만든 것도 디지털 영화가 이러한 산업체제로서의 성격을 가졌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봉준호 영화에는 디지털 특수효과에 대한 식민성, 탈식민성의 양가적 태도가 나타나는데 이는 디지털로의 이행과정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한국영화계의 기술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탈식민성에 대한 이중적인 지점들을 봉준호가 미국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미자라는 소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드러내는 측면은 그녀의 단호한 행동과 대치되는 모호한 현실 속 이미지들이 일으키는 기억의 모호한 지점들을 드러낸다. 미자는 영웅적 행위를 불사하면서 옥자를 기필코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오는데 이는 잃어버릴 뻔한 과거를 되찾아오는 행위로서 디지털 기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자는 옥자를 데려오기 위해 할아버지가 준 금돼지를 미란도와 맞교환한다. 경제적인 댓가를 치루고 옥자를 당당히 데리고 오는 미자의 선택에서 오늘날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국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미자는 과거를 되찾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포기한다.
봉준호는 미자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강대국 미국의 자본가의 횡포에 저항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기술에 대한 동경이나 선호의 감정은 민족적 정서와 충돌하고 이러한 지점에서 미자의 행동은 기술도 민족적인 자존감으로서의 기억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결말에서 미자는 강원도 집으로 옥자를 다시 데려오고 거대 사육 공장에서 작은 수퍼 돼지도 함께 숨겨서 데려온다.
미국의 과학 기술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훔쳐와야 하는 무엇으로 나타난다. 수퍼 돼지는 미국의 첨단 과학 기술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에 대한 옥자의 강한 애착심은 가족처럼 함께 지내온 옥자에 대한 감정 이상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이 욕망 속에는 기술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지가 나타난다. 기술을 상징하는 수퍼 돼지는 두 마리가 되었으며 이들이 다시 본래의 지점에서 공존하게 된 것은 탈식민성과 함께 기술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강대국의 기술에 저항하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식민성의 개념을 초월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소유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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