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태하고 게을러진 거 같다. 일을 하지 않으니 시간에 자유롭고, 오히려 일할 때보다 집안은 더 엉망인 것이..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나. 그래도 이제 출산일까지는 고작 39일이 남았다. 경산모라서 일찍 나올 거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예정일 근처에 낳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가지고 4월 13일에는 어디론가 떠날까 한다.
나의 바람이라면 아이가 5월에 태어났으면 한다는 것. 4월 한 달을 내리 더 쉬고 싶다는 강한 나의 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잘도 이것저것 먹어대서 배가 부른 게 확실히 티가 난다. 나보다 몸집이 더 큰 여동생이 작아서 못 입는다고 준 옷은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임부복이 되었다.
스트라이프 셔츠인데 앞부분은 짧고 엉덩이 쪽 뒷부분은 길어서 살이 쪄 펑퍼짐 해진 뒤태를 조금이라도 가려준다. 첫째 임신 때는 임부복을 뭘 사야 하나 이런 고민들을 잠시라도 했었는데 둘째 임신에는 모든 것이 초연하다. 사실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주문하는 것이 과소비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저귀와 분유는 세일할 때 많이 쟁여두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분유값도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드는 것인데 다행인지 엄마의 고집에 아이가 꺾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첫째가 분유 중에 그나마 중저가 분유에 적응해준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산양분유 같은 한통에 십만 원은 넘어버리는 것만 고집했다면 금전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6개월만 넘어가도 일주일에 한통 이상 먹어대는 아이에게 들어가는 식비가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그냥 주는 대로 잘 먹은 아이라고 칭찬이 하고 싶은 거 같다.
아침마다 하는 산책은 앞으로도 출산 전까지 계속 더 하고 싶다. 며칠 안 남은 평온한 일상인데 마음껏 글 쓰고,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챙겨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후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생각보다 몰입이 되지 않아 50페이지쯤 읽다가 관두고 짧은 낮잠에 들었다. 어떡하지. 뭔가 바뀌어 간다.
생각해보니 이곳에 글을 쓴 이후로 빠져드는 소설을 읽은 것이 손에 꼽을 지경이다. 특히 에세이를 보고 잘 썼다고 느끼는 글들은 더욱 드물게 되어 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이병률 작가의 짧은 글을 보게 되어 오랜만에 필사를 하는데 글이... 글이 특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분들의 글이 전혀 특별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넋두리 섞인 푸념 같은 에세이라고 느껴버려서 놀라 황급히 펜을 내려놨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보다가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아 책을 덮어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제 생산적인 글에만 열광하게 된 걸까? 어떻게 그들의 글을 읽다가 덮을 수가 있게 된 걸까. 2019년 올해에 또 나의 관점이 바뀐 것 같다. 무슨 이유로 바뀌고,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덮어버리게 되는 것인지 그건 조금 더 생각해볼 문제다.
아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