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할줄 알았지만 사실 항상 찝찝하다. 내말을 듣는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얼마전 읽으려다 접었던 무라카미 류의 소설 도입부에 이런글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누가 울어줄까?하는 한번쯤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생각해봤을 법한 글이였다.
문득 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하며 떠오른 생각이였다. 끝끝내 이어가던 모임을 스스로 나오면서 홀가분함보다 찝찝함만 가득했다. 때려치면 속시원할줄 알았는데 그것도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내생각 1번 해주는 사람이 또 줄어든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무덤속에 묻혀지내다 누군가가 불러주면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는건가. 사람들과의 우정을 져버린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내 장례식에서 울어주지는 않아도 됩니다.
중학교때 심심하면 하던 그 '장례식 조문객 인원수'를 세어보는 일은 20살중반쯤에서야 끝이났다. 더는 조문객을 세어보는 짓이 영 내키지도 않지만 그런 생각조차 잊어버린것이다. 조금더 일찍 기관의 도움을 받았다면 나의 십대와 20대초반이 더 밝았을까? 이미 지나버린 일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너는 이상하지 않다는 그 한마디를 듣기위해 먼길을 돌아돌아온거 라는거. 그 한마디를 못들어서 긴시간 우울했다니. 정말 바보같아.
결국 내가 말하던 우울! 그것도 나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건가. 참으로 남을 많이 의식하며 살았구나. 지나고보니 나혼자 그걸 꼭 부둥켜 안고서 뭐하는 짓이였나 싶다. 다행히도 내주변은 우울의 그림자를 티내며 다니는 사람은 몇 없는것 같다. (모르지. 속으로 썩고 썩어가는 중이지만 내색하고 있지 않는것일수도 있겠지.)
갑자기 이런 시덥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위대한 내가 또한번 무리에서 빠져나와서 그런것 같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내가 남들과 다른것 같아서 걱정했을텐데. 확실히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기고 그런생각이 1도 없는것 같다. 언제든 돌아가야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묻고 또 묻던 별볼일 없는 어떤 여자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었다.
어쩌면 자식들이 크고 나서 엄마라는 타이틀이 해야 할 일이 많이 없어지면 어쩐지 쓸쓸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는 모습을 수없이 봐주던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와 내가 자식을 낳고 엄마가 되어 자식이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매일 지켜본다. 그리고 내 자식이 내게서 떨어져나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또 곤히 자는 아기얼굴을 어루만지겠지.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이어져온 이런 사랑스런 관습이 좋다. (내딸이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해도 그것도 그것나름대로 괜찮다.)
아무도 내 장례식에서 울어주지 않아도 괜찮아.
이젠 정말 괜찮아.
나는 탈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탈것에 집착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