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범퍼카를 타는 일.'
운전면허를 위한 기능시험.
횡단보도를 지나 시동을 꺼트리지 않고 방지턱을 넘은 다음,
굴곡점에서 어깨선을 맞춘 후 핸들을 최대한 돌려 통과,
S자 주행, 가속구간, 직각주차 모두를 완벽하게 해낸 뒤 마지막 관문.
돌발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정차하면 무사히 기능시험은 끝이 난다.
어디 우리네 삶이 그러한가.
정해진 코스만을 준비한다면 단번에 합격하지 못한다 해도 이내 자격증을 거머쥘 수 있을 일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라면 그건 더 이상 어렵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니,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급발진을, 핸들을 이리저리 꺾느라
사고가 나기 쉽상인게 실제 우리의 모습이다.
전후좌우 언제 어디서 나를 들이받을 지 모르는 공포의 범퍼카처럼.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 일이 쉬운 게 없다.' 는 어머니 말씀처럼,
'남의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없다.'는 아버님 말씀처럼,
살아간다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하나 없다.
모두에게 이번 생이 처음이니까.
세상은 우리를 쉽게 분류하기 위해 이런저런 구분을 해놓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불리기를 12년,
대학을 들어간 이는 전공을 따라, 일찍 취업은 한 이는 일을 따라 규정되어 진다.
사회복지학과였던 나는 전공에 따라 길을 정해버린 채 봉사활동에만 전념하는 일이 답답했다.
철학과 강의를 도강하고 미술사 강의를 신청하고 책이 좋아 문헌정보학을 복수전공했다.
(철학은 따분했고 미술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모네' 프리젠테이션을 남겨줬고, 문헌정보학은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을 수 있을 거란 내 로망을 산산히 깨뜨렸다.)
어쩌면 전공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기 보단 '나'라는 사람에게 선을 긋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관계도 그렇다.
'친구'라고 규정되는 수많은 관계들을 모두 '친구'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설문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 매우 친하다, 2. 친하다, 3.보통이다, 4. 친하지 않다, 5. 매우 친하지 않다. 등의
선택형 답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
지나간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같은 'EX'라고 부를 수 있을리가.
'작은 점들이 모여'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찍고 노선을 그려나가듯
하루하루 삶의 궤적을 따라 점을 찍어 나갈 뿐,
한번의 성공으로 자격증이 주어지는 일도 없고,
졸업, 취업, 결혼에 골인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지도 않는다.
애초에 결승지점 같은 건 없는 것이다.
생이 끝나기 전까지 살아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이 점들이 무의미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
수많은 점들을 따라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는 중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