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언어'
군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다.
다음의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유추해 보자.
'예씀돠~~!'
'상뱀~~!'
먼저 1번.
'예씀돠'가 사용되는 상황을 통해 볼 때 이는 고참의 물음에 대한 긍정의 답으로 보인다.
이는 '예, 그렇습니다.' 와 '예, 알겠습니다.' 모두에 사용되는 말로 빠른 대답을 위한 축약식 표현이다.
다음 2번.
'상뱀', '예씀돠'만큼이나 처음 듣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말로 고참을 부를 때 외치는 뱀이다.
이는 OOO상병님!을 역시나 빠른 부름을 목적으로 한 축약식 표현이다.
처음 이등병때는 이 표현들이 입에 붙지 않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상병쯤 되었을 때 '예씀돠'에 말이 짧다며 기분 나쁘지 않고
멀리서 부르는 그 뱀이 나를 부르는 뱀인지 알고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절정은 휴가를 나와 친한 형의 '잘 지냈냐'는 물음에 우렁차게 '예씀돠'를 외치는 상황.
'팔도 사투리의 합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를 간다.
거의 모든 시간을 고향에서 보낸 사람들은 입영과 동시에 타지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왔던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을 객관화하기 힘들다.
외국에 나가면 없던 애국심이 생기는 이유.
생전 경상도를 벗어날 일이 없었던 나는 강원도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말 그대로 팔도에 사는 남성들이 다 모이다 보니 다양한 사투리들을 경험했는데,
평소 경상도 사투리의 거센 느낌을 불편해 했던 나는 드디어 제대로된 학습의 장을 만난 것이었다.
거기다 장교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직을 맡다보니 학습자료는 굉장히 풍부했다.
그 날로 니 말도 내 말도 아닌 다양한 한국어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전라도 사투리는 섞질 않았고(방언의 느낌이 강해서, 한데 서울과 가까운 전북은 그 느낌이 덜 했다.)
서울말이라 불리는 표준어는 경상도 남자에게는 살짝 몸 한구석이 베베 꼬이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다행스럽게 군대말투는 어느정도 절도가 필요하므로 전형적인 경상도 사투리 단어들은 걸러내고
억양은 위아래를 깎아낸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의 무뚝뚝함을 유지한 경상도 말과
책에 나오는 표준 단어와 음정이 칼같이 맞을 때 느끼는 쾌감과 같이
입 끝에서 소리가 터져나올 때 청량감이 느껴지는 발음으로 팔도에 존재하지 않는 사투리가 만들어졌다.
목소리를 녹음해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느낌대로 말하며 굳어진 나만의 사투리.
그 사투리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들려졌는지는 그로부터 제대를 이틀 남겨둔 시점,
한 후임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 박OO 병잠(상뱀처럼 병장님을 부르는 말) 저 이등병 때 계란 후라이 2개 구워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고생많으셨고 전역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나 박OO 병잠~ 집이 서울 어디십니까?"
"엥? 우리집 부산인데?"
" 예? 정말입니까? 전 지금까지 박OO병잠 당연히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기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성공한건가?'
'근데 서울로 전제하고 물어보다니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군.'
그로부터 12년,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