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교회를 다니시는 이유로 뱃속에서부터 예배말씀과 찬송과 기도를 듣고 자란 모태신앙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 교복처럼 동네 주변에서 누가봐도 알 수 있는 교회 전용 크로스 가방을 메고 교회를 오가는 일이 일상이었다. 보수적이고 청교도적인 신앙을 추구했던 교회 분위기를 따라 그 흔한 밴드도 없는 피아노와 오르간만으로 이루어진 찬송을 부르며(요즘은 오케스트라가 생겼다고 한다.), 생활 또한 금욕을 강요하진 않았지만 세상욕심을 경계했다. 교회를 빼먹는 날에는 야단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으며 집중적인 말씀공부를 위해 진행되는 휴가철 수련회는 도시에서 자란 어린 내게 그저 예배 전후 시간에 개구리를 잡으러 산이며, 들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흥분되는 일정이었다. 고3 때, 야간 반강제 학습시간에도 삼일예배를 위해 수요일에는 일찍 교회로 향했고 군대를 가기 전 주일에는 잘 다녀오라는 여러 교회분들의 응원에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는 모태신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굳어진 교회생활을 되돌아보며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다보니 조금씩 교회가는 일이 가식적으로 느껴져 힘들어 졌지만 교회를 빼고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강목사님께서 돌아가셨다. 내일 입관예배에 가야하니 10시까지 집으로 오려무나."
조금은 빛바랜 30년도 더 된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사진에는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목사님과 부인되시는 집사님, 그리고 갓난 아기였던 동생과 2살 터울의 형인 내가 있었다. 우리를 업고 예배를 포함해 일주일 중 5일 이상을 교회에 갔으니 아마도 목사님과 집사님은 친가나 외가 할머니, 할아버지보다도 더 자주 우리의 어린시절을 지켜봐 주셨던 분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로 교회에 가는 일이 줄어들면서 왕래가 많지는 않았지만 집사님이 다치셔서 입원했을 때도 방문해 누워계신 집사님 손을 잡아드린 기억이 난다. 목사님과 집사님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님을 제외하고 나를 위해 기도라는 행위를 가장 많은 순간 해주신 분들이실거다.
강목사님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군부사관 출신답게 늘 절도있는 걸음걸이와 말투로 연세가 드셔도 강단이 있으셨던 모습, 흐트러짐 없는 정장차림에 페도라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시던 멋진 모습, 정말 친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왔냐며 이름을 불러주시고는 읽지도 않는 말씀용지를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시던 모습. 다시 생각해봐도 좋은 분이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80이 넘은 연세에도 소속 성도들 집을 방문하시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조금 있다 Tim이 남자로서나 탁구 플레이어로서의 많은 실패들에 대해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먼저 얘기해야 할 중요한 것은 저는 인생을 사는 동안 단 3명의 남자만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는 얼음같은 사람이었으니 제외하고, 사랑하는 데스몬드 삼촌,
당연하게도 B.B.King, 그리고 여기 이 젊은이입니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저는 단 한가지만을 충고합니다.
결국엔 우리들 모두 비슷하다는 것.
결국엔 우리 모두 늙게 되고 같은 얘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것.
그렇지만 할 수만 있다면 상냥한 사람과 결혼하라구요.
여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상냥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많은 부분에서 특별히 자랑스러워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만,
내가 Tim의 아버지란 사실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영상은 주인공 Tim의 아버지가 Tim의 결혼식 축사를 하는 장면이다. 언제 한번 영화에서 장례절차 중 고인과 친분이 있는 지인들이 한사람씩 나와 고인을 추모하며 각자가 고인과 함께했던 추억을 얘기하며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공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고인 앞이라 할지라도 유머가 빠지지 않았다. 축사가 되었든, 추모사가 되었든 한국에서는 그런 절차를 흔하게 볼 수 없다보니 그런 문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그 혹은 그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 펼쳐놓는 장면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언제든지 꺼내어볼 수 있는 기억 저편에 남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축복같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보다 더 감사한 축하나 조의가 또 있을까?
아무래도 결혼을 하니 모든 인간관계가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께 가슴 먹먹한 편지를 보냈던 것처럼 결혼을 하면 다 효자가 된다는 말이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요즘이다. 거기다 아이가 태어나자 자연스럽게 또 새롭게 만들어진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낮에는 좀 덜한데 밤이 되어 캄캄한 새벽에 아이가 혼자 눈을 떳을 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에 5분 대기조처럼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지켜봐준 부모라는 존재 외에도 나의 많은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인간관계에 좋은 기억만 남는 법은 없지만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그것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도 결국에 사진 한 장을 매개로 방아쇠가 당겨지듯 불러 일으켜지는 지난 날의 소중한 기억들이니 말이다.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해야 할만큼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분이신데... 후회는 늘 늦다. 주변에 또 감사함을 전하지 못한 다른 분들이 있는지 떠올려보면서 또 뭔가 하나를 어렵게 배운 기분이 든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는 결혼을 결심했었다. 아내에게 늘 하는 말처럼 티도 안날만큼 더디게 변해가는 나지만 이 모든 게 내가 아닌 아내를 포함해 나를 둘러싼 그들의 사랑과 이해로 인함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모두들 자주 보지 못해도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