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소크라테스가 했을까요?
아니면 니체가 했을까요?
아닙니다.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했어요.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아주 불운하게 보았어요. 세상이란 불행의 연속이라고 보았지요.
불교라든지 힌두교에 심취했어요.
불교에서도 인생을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보았잖아요.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해탈이라고 보았고요.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했지만, 인간이 범죄를 했기 때문에 세상에 온갖 더러움이 넘처난다고요.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악와 불행이 넘치는 것은 다 "심판"이나 "업"과 같은 인과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랍니다.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나쁜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옥의 불을 이 세상에서도 맛 보는 셈이지요.
이렇게 심판과 업은 모든 도덕의 근본원칙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삭막한 세상에서 "구원" 받을 길은 없을까요?
누구도 참으로 착한 사람이 없으니까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잖아요.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자비"이고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랍니다.
자비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예요.
그래서 모든 도덕률의 기준은 "연민"이라고 한 것 같아요.
연민이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니까요.
도덕이란 어머니와 같다고 봐요. 우리의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엄마는 아이를 잘 타일러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잖아요.
반면 "법"이란 아버지와 같아요. 엄격하잖아요. 기계적으로 적용되고요.
법과 도덕 중에서 무엇이 더 기본적이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다투고 있지만, 저는 "도덕"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답니다.
엄마가 자식을 키우지 아빠가 키우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보살핌이 절대적입니다.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는 절대로 클 수 없어요.
아이가 사리를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어서야 아빠가 개입을 해요.
저는 쇼펜하우어의 이 명언에 공감합니다. 도덕이 먼저 연민으로 사회의 구성원을 보살펴야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어요.
인정이 없는 곳은 아주 메마른 곳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