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트라시마코스)
우리는 권력에 짓눌려 살고 있어요. 때로는 권력에 아부하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이 정의를 부르짓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지요.
주먹은 법보다 더 힘이 쎄요.
더 크고 더 무시무시하죠.
눈 앞에 보이기는요.
항상 그래요.
선진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지요.
선진국일수록 권력의 힘이 물리력에서 점점 "금권", 즉 돈의 힘으로 바뀌고 있을 뿐, 권력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저는 권력을 갖고 있지 않는 소시민으로서 권력자의 권력을 통제하기를 원해요.
그래서 법이 서고, 정의가 서기를 원하지요.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법이라는 것이 약자의 편이 아니라 강자, 권력자의 편이라는 것을 가끔 깨닫게 될 때가 있어요.
트라시마코스는 플라톤의 책, "국가"에서 나오는 인물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을 때,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변합니다.
트라시마코스는 당시 궤변론자로 알려져 있는 소피스트 중 하나라고 하네요.
소피스트는 권력이 정의를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인물이죠.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어요.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를 통일할 위대한 군주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 군주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를 갖춘 사람이고, 윤리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보았어요.
도덕이나 윤리, 양심과 같은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냉혹한 현실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쟁취할 인물은 결국 승리하겠지요. 그 승리자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바로 "법"을 제정하는 것이죠. 즉 권력의 힘에 의해서 법이나 "정의"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헌법을 공부하다 보면, 칼 슈미트라는 헌법학자가 헌법제정권력을 말하고 있어요. 헌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력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어떤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국가의 모든 권력을 만들어낸다지요. 헌법이야말로 모든 "정의"를 만들어내는 근본법이잖아요.
그럼 권력자, 즉 강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정의란 말인가요? 이 말이 진리란 말인가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이 말이 참말인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진실의 일면을 포착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달리 보면 절대적인 강자는 어떠한 법칙이나 정의의 원칙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데, 굳이 법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겁니다. 강자가 항상 강하다면 굳이 정의를 부르짖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지만 사태의 변화에 따라 강자가 약자가 되기도 하고, 약자가 강자가 되기도 하죠.
정의란 양면성을 지닌 것 같아요. 강자만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의라면 어느 누구도 보호할 수 없지요. 강자는 보호의 필요성이 없는 것이고, 약자는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또 모든 사람은 항상 절대적인 강자일 수도 없지요.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언제라도 약자의 처지로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법을 만들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약자와 강자가 전혀 교체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지요. 하지만 정의가 필요하게 되는 사회는 약자와 강자가 교체되는 사회이지요.
사회적인 유동성이 있는 사회가 정의로울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죠.
누구라도 약자가 될 수 있으니까 정의가 필요한 겁니다. 민주적인 사회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여러 세력이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권력의 순환을 용인하는 사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