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는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석가모니
치열하게 무언가를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또 다른 치열한 어떤 것이다. 그 종착점에 삶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건 고요하고 고독한 죽음이다. 치열하게 살고 고독하게 죽는 것은 이 땅에 인간이란 종의 시작을 알린 그 최초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피해가지 못한 종의 운명이다. 이 사실에 우리가 무상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결국 얻는 것은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라니.
⠀죽음은 어떤 것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인간을 막론하고 고양이도, 아메바도 죽음을 맞는다. 고양이나 아메바 또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데에 허무감이 들까. 아메바는 몰라도 고양이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어렴풋이나마 죽음 이후로는 간식을 먹는 것도 장난을 치는 것도 못한다는 사실에 허망감을 느끼지 않을까.
⠀죽음을 떠올리면 인생이 허무하다지만 죽음은 인간의 가장 재밌는 고민거리일지도 모른다. 오감이 차단된 채로 의식만이 있다면 인간은 무엇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 하늘의 태양도, 끝없이 펼쳐진 바다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맛을 느낄 수도 없고 후각이나 촉각마저 없는 인간에게는 그다지 궁금한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누구고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게 그 인간의 하루 일과일 것이다. 물론 언어를 배우지 못했을테니 저런 구체적인 사고는 아닐 것이다.
⠀어릴 때부터 죽음은 나를 강하게 매료했다. 죽음이 두려워 침대에 혼자 누워 울기도 했었고 어떨 땐 신이(있다면 말이지만) 나에게 죽음을 극복하라는 사명을 내린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수많은 고뇌 끝에 결국 남은 건 현재 살아있음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의 나에겐 나름대로 멋진 결론이다 싶었지만 결국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어느새 죽음을 연구하는 것은 내 꿈이 되었다.
⠀사실 죽음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무엇이고 그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각자 믿는대로 설명한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죽음이 정녕 무엇인지.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해본 결과 죽음 후를 떠나서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불확실하다. 내 육체가 죽어야 죽음인가? 내 영혼이 죽어야 죽음인가? 내 뇌 속에 형성된 인격이 죽어야 죽음인가? 난 일단 영혼을 믿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관점은 차치해두고서라도 내 육체가 진정한 나인지 내 인격이 진정한 나인지도 불명확하다. 내 심장이 멈춘 후에 내 인격을 그대로 다운로드받아 컴퓨터로 구현한다면 그 컴퓨터 속 나는 계속 나를 ‘나’로 인식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나일까? 아니라면 심장이 멈춘 순간 내가 죽은 것일까? 심장이 5분 정도 멈췄다가 새 심장을 갈아끼우면 그건 나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 만약 내 육체를 반으로 정확히 나누어 반은 인공장기로 대체하고 둘 다 살릴 수 있다면 둘 중에 누가 나인 것일까? 또는 몸은 안나누고 좌뇌와 우뇌를 나누어 각각 다른 육체에 의식하면 그건 나일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인간을 좌절하게 만듦과 동시에 삶의 의지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