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by @leesongyi
성수동
조선시대에 성수동 일대는 뚝섬, 살곶이벌로 불리었다. 한양 도성의 외곽 지역으로 왕의 사냥터와 군사훈련장, 국영목장 등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말 가운데 암말은 자양동과 모진동으로, 숫말은 마장동으로 보냈다.
1934년 경성부는 청량리 일대를 경공업지역으로 지정했다. 뚝섬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였으나 부결되었다. 당시 위원회는 ‘경성부회 시가지계획위원회’였다.
뚝섬은 도심에 공급하는 과일과 채소를 키웠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성수동과 화양동 일대에 자생적으로 공장들이 들어서며, ‘만물 공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성동교와 뚝섬 간에 저습지가 있었는데, 매립되고, 봉제, 섬유, 금속 기계 업체들이 이전해왔다.
성수동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공단이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 청계천 일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지가가 싼 성수로 이전하며 공업지역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 일대 29.4제곱킬로미터에 대하여 1962년 준공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정하였다. 그리고 4년 뒤에는 87.4제곱킬로미터로 면적을 3배 가까이 늘렸다.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성수동
6.25 전쟁으로 터전을 잃어버린 영세업체들은 도심과 가깝고 땅값이 싼 이곳을 이전 대상의 최적지로 삼았다. 50년대 말 60년대 초였다. 63년에 마포에 있던 모나미공장이 이주하면서부터 대형업체의 이전도 가속화되었다.
동아일보 1994.12.12
이전한 기업 가운데에는 모토로라코리아, 아남산업, 한일약품, 신도리코 등 기업들이 있었다.
참고문헌
김희식, <서울성수공단의 형성과 변용에 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