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가 아닌 여우가 되자
약 2,600년 전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는 "여우는 사소한 것을 많이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안다"고 썼다. 후에 이사야 벌린이 유명한 에세이 <고슴도치와 여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하여>에 이 문구를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벌린은 작가와 사상가를 크게 두 가지 범주, 고슴도치와 여우로 나누었다. 고슴도치는 하나의 결정적 사고틀을 통해 세상을 본다. 반면 여우는 거대 이론에 대해 회의적이며,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에 기댄다.
테틀록은 의사결정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벌린의 비유를 재빨리 가져왔다.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 연구에서 테틀록은 전문가를 고슴도치와 여우로 구분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전반적으로 그리 성과가 좋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고슴도치와 여우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여우처럼 행동했던 전문가들이 전체적인 성과면에서 고슴도치처럼 행동했던 전문가들보다 유의미하게 좋은 성과를 냈다.
왜 고슴도치들은 성과가 좋지 못했을까? 먼저, 고슴도치들은 하나의 이론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론은 전문가들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심어준다. 더 안 좋은 것은 고슴도치들은 예측과 다른 증거가 나와도 자신의 관점을 쉽사리 바꾸려 하지 않는다. 테틀록의 연구에 따르면, 여우들은 자신들이 진술한 내용 중 59% 정도를 대안적인 가설로 변경한 반면, 고슴도치들은 오직 19%만을 변경했다. 다시 말해 여우들은 고슴도치들보다 베이지안 추론을 더 잘했다.
고슴도치들과는 달리, 여우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다. 여우들은 고슴도치들보다 보정 점수와 판별력 점수가 높았다. 보정은 지적 겸손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응답자의 주관적 확률척도가 객관적 확률척도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판별력은 판단 결과가 얼마나 옳았는가를 나타내는데, 응답자가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건보다 실제 일어난 사건에 더 높은 확률을 주었는지 측정한 것이다. 고슴도치는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고집스런 신념을 갖는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에 확률을 할당하는 경향이 높았다.
테틀록은 여우들이 세 가지 뚜렷한 인지 우위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여우들은 적당한 확률치로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자신의 초기 추정치가 이용 가능한 사전확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마음 속에 본능적인 항법장치를 갖고 있다.
여우들은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고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여 관점을 수정한다. 건전한 베이즈 추론과 수정을 이용한다.
여우들은 다른 주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뿐 아니라, 타당한 비유가 있다면 가져다 사용한다.
고슴도치들은 거창한 생각 하나로 시작해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로부터 예상되는 논리적 결과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반면, 여우들은 여러 생각들을 함께 모아 엮는다. 생각들 간의 유사점을 알아보고 이해한 다음, 통합된 가설을 만들어 낸다. 여우는 격자틀 정신모형 투자자의 완벽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책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