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https://pixabay.com/>
@smartcome님의 아래 글을 읽고
@withme님을 알게되었다.
상처 속에 핀 꽃 @withme 작가님을 응원해주세요!
https://steemkr.com/kr/@smartcome/withme
@withme님이 쓰신 어제 글까지 모든 글을 읽었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참 많았다."라는 제목의
글을 3개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쁜 사람들 참 많다. 진짜다.
물론 반대로 참 좋은 사람들도 많다.
진부한 성선설, 성악설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다 똑같다는 상투적인 얘기도 적절치 않다.
어렵다. 왕따 얘기는 어렵다.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지만
왕따 얘기를 하는 것은 불편하다.
나의 이야기가 상처를 받았던 사람에게
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받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는다.
당당히 맞서는 것은 "진실"과 대면할때
더 강해지는 법이라 믿고 있다.
나의 학창시절 얘기를 먼저 하고싶다.
난 왕따를 했던 경험도 왕따를 당해본 경험도 없다.
내 학창시절에도 물론 아주 질나쁜 아이들이
다른 이들의 돈을 빼앗는 경우는 많았다.
그것을 왕따라 부른다면 뭐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왕따는 아니다.
예전에 왕따를 "집단"따돌림이라 불렀다.
난 이 말이 훨씬 문제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라 생각한다.
내 나이는 50이 넘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왕따가 아주 큰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엄청나게 많지도 않았다.
왜일까?
내가 늘 주장하는 것이 있다.
왕따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옆반 아이들과 축구시합이 벌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옆반과 혹은 옆동네와 패싸움이 벌어진다면
그 순간 모든 왕따는 사라진다.
요즘 왕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더 심각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난 아이러니 하게도 "선생님"들이 합리적이 되고
친절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선생님은
"님"이라는 글자를 붙이기도 싫을 정도의 개XX 였다.
존경?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아니 대학교 시절까지 포함해서
나를 가르쳤던 그 수많은 선생들 중에서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은 딱 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선생님은 그가 솔선수범해서 심각한 범죄행위를 매일 반복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때렸다.
도대체 왜 반 평균을 내려가게 했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던 것일까?
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이라는 작자가 만인의 공공의 적인 상태에서
우리는 마치 교도소에 수용된 죄수들이거나
혹은 봉건시대 영주에 소속된 노예들 같은 신세였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엄청난 약자인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공공의 적 타도를 위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조금 왕따가 덜 심했던 것은 아닐까?
왕따는 성폭행보다 심한 범죄이다.
@withme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을 몇개 기술해 본다.
볼펜이나 연필을 빌려갔지만 돌아온적이 없다.
교과서를 훔친다.
책상서랍에 개똥을 넣어놨다
내 머리를 몇대씩 때리고 지나갔다
반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로 내가 뽑혔다
절도, 폭행, 명예회손 등등...
정말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런 당연한 범죄행위를 왜 신고하지 못하는 것일까?"
당연히 경찰서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는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왕따가 더 심각한 이유는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는지 모른다.
문제는 선생님이다.
왕따가 발생했다.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알았다.
이후 선생님의 대처는 언제나 잘못되어 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 발생했다.
남편에게 맞은 아내는 경찰에 신고한다.
가정의 일은 가정에서 알아서 하라며 돌려보낸다.
가정폭력은 다시 반복된다.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문제는 발생한다.
학교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된다.
왕따는 사회에서도 아주 공공연하게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그리고 회사에서도
인간이 모여있는 모든 곳에서 왕따는 발생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이렇게 문명을 이룬 것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고 그 집단의 크기가 커지고 커져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 발전을 이루어온 것이다.
이는 운명이다.
왕따는 권력행동이며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행동이다.
인간의 저급한 동물적 본능이다.
선생님은 왕따가 범죄행위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시켜야 한다.
이것은 유치원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왕따" 과목이 있어야 한다.
한두번 한두마디 말을 한다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어렵다.
"왕따" 과목이라도 신설해야 한다.
안되면 될때까지 해야 한다.
매일 한시간씩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끝장 토론도 해야한다.
할수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내편"인가?
왕따를 하는 아이들도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도
모두 "내편"을 만들고 싶어한다.
인간은 약하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이것은 본능이다.
약하면 약할수록 그 약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집단을 이루려고 한다
집단의 결속을 높이는 방법은 적을 만드는 것이다
외부에 적이 없으면 내부에서 찾아낸다
약한 아이는 강한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있고 안타깝지만
본능을 이기고 반대의 편에서 함께 싸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편에서
당당하게 함께 왕따를 당하면서
"그 아이의 내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불의를 보면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
내 힘만으로 안되면 다른 이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싸워야 한다
죽을 때까지 싸운다
아니 싸우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이다
오늘도 또 결심한다
나는 당당하게 함께 왕따를 당하면서
"그 아이의 내편"이 되어줄 것이다
비록 그 아이와 나 둘만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