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언론을 통해서 전해진 적이 있었던, "부정의 힘, 비관론자가 더 잘 사는 이유는" 이라는 기사 내용을 일부 인용해본다. 관련기사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171221003602
미국의 유명한 목사 조엘 오스틴이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은 장기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에는 ‘믿는 대로 된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을 믿고, 마음을 바꿔 새로운 삶을 설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 결과 ‘긍정의 힘’을 믿는 낙관론자보다 비관론자가 오히려 더 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 최신호가 보도했다. 이 매체는 “긍정적인 사고가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전했다.
부부 양쪽이 모두 낙관론자여서 결혼 생활에 대해 지극히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으면 부부 관계가 악화하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마련이라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우선 낙관론자보다는 비관론자가 돈을 더 잘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지난 20년 동안에 걸쳐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관론자가 낙관론자보다 25%가량 더 많은 소득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또 비관론자보다 낙관론자가 오히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NC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심장병 등 중병에 걸릴지 모른다고 걱정하며 사는 비관론자가 낙관론자보다 자신의 건강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질병 등을 좀 더 일찍 발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신은 건강의 적이다. 예를 들면 방사성 기체 원소인 라돈(radon)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들었을 때 낙관론자보다는 비관론자가 실제 자신의 주택에 라돈 문제가 있는지 조사해볼 가능성이 크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낙관론은 종종 실망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심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시험 결과에 대해 낙관하는 학생은 기대한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즉각 실망하거나 화를 낸다. 그렇지만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는 학생은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애틀란틱이 강조했다. 사회 분위기가 들떠 있을 때보다는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을 때 사회 구성원 간 대화가 긴밀하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더 공정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실시한 조사에서 사람은 즐거운 영상을 보았을 때보다 슬픈 영상을 본 뒤에 타인에게 더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미시간대의 심리학자들은 ‘방어적 비관론’(defensive pessimism)이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방어적 비관론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다트 게임을 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 때뿐 아니라 실제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대치를 낮추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사람이 낙관론자보다 노년에 신체 장애를 겪거나 조기에 사망하는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나 역시 한 때는 긍정 심리학의 맹신자에 가까웠던 적이 있었다. 약 10년전 쯤에 전 세계적으로 '론다 번'이 지은 '시크릿'이라는 책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긍정적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개발서적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현대 긍정심리학의 시초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나폴레온 힐'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의 책을 시작으로 하여 에스더힉스&제리힉스 부부의 서적까지를 거치면서, 긍정적 심리학 중심의 자기개발 서적들은 대부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출판계의 상징적 흐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적 심리학의 중심 테마는 대부분이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 듣기 좋은 말을 자주 하고, 행복한 상상을 자꾸하면 그것이 현실로 끌려들어와서, 삶의 윤택함이 더해진다"는 것들이다. 이것을 <유인력의 법칙> 혹은 <관찰자 효과>라는 물리학적 이론을 접목시켜서 설명을 하면서, 과학적으로도 설명타당한 객관적 논리가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들이 이론적으로는 손색이 없는 아주 좋은 법칙의 인용이자, 또한 아주 설득력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의 심리학이 현실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 다양성과 특이성을 감안해야만 하고, 또한 사람마다 환경마다 선천적인 심리구조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을 맹신에 가까운 긍정의 심리학에만 빠져든다는 것은 이미 이 자체가 부정성의 강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 발생하게끔 되어버린다.
나 역시도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 인문학 정신수련 분야를 전전해오고 그 과정에서 익혀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상담치료를 해오면서, 긍정적 심리학의 서적들을 읽어보고서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켜보기도 해보았지만, 결국은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오류와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긍정의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공통적인 목표 역시, 인간이 '사랑' 과 '행복' 으로 충만해져서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영위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사랑과 행복을 향해서 나아가는 인간고유의 이성적이고 지성적 판단능력의 개입을 가지고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 행복의 추구에 반하는 것을 비평하고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게끔 되어져 있는 것이지, 그것 자체를 부정적이라고 매도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 자체는 크나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간혹, 초긍정의 심리학을 맹신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나는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아주 긍정적인 삶을 살아요" 라고 하지만, " 비평가를 위한 기념비 동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긍정적 맹신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은, 과연 오늘날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긍정적인 삶의 윤택함이 과거에 사회의 오류를 비평하고 이것을 바로잡아서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실천적 삶을 살았던 선지자들의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비평가를 위한 기념비 동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좋게 받아들이는 심리를 강조하기 이전에, 현재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여유로움과 안락함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과거 역사에서 인간사회의 오류와 문제점을 숨김없이 비판하고 비평을 하면서, 이성적인 분별능력에 입각하여 목숨걸고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얻기위한 실천적 노력의 삶을 살다 간 자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인데, 그 고마운 위인들 앞에서 조차도 '초긍정의 심리학'만을 강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