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 백설공주는 7살 되던 해의 어느 날,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시기했던 새엄마이자 새왕비의 사주에 의해서 사냥꾼에게 숲으로 끌려가서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진다. 하지만 백설공주를 사랑하고 있던 사냥꾼은 새왕비의 명을 어기고서, 백설공주의 폐와 간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 돼지의 폐와 간을 가지고 가서, 백설공주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숲 속에 혼자 남겨진 백설공주는 일곱 명의 난쟁이가 살고 있던 작은 오두막을 발견, 집안일을 도와주며 그 곳에서 은신을 하지만, 왕비의 거울이 여전히 백설공주가 최고로 아름답다고 대답을 계속 하는 바람에 백설공주가 살아있는 것이 들통나고 만다. 왕비는 백설공주를 없애기 위해 오두막으로 찾아가 끈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또 독이 묻은 빗으로 머리를 빗게 하지만, 그때마다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왕비의 마지막 계략이었던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백설공주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슬픔에 잠겨 있던 난쟁이들 앞에 이웃 나라 왕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관 속에 누워있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그러자 백설공주의 목에 걸려있던 독사과 조각이 튀어나오고, 그녀는 다시 깨어나게 된다. "
우리가 지금까지 읽고 들어왔었던 백설공주는,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등의 고전적인 명작동화의 구성요소와 거의 비슷한 대립구조이자 그 시대의 문화적 가치관에 어울리는 인물들의 요소들이 가미되어져 있는 동화작품이다.
백설공주의 원작명은 "Schneewittchen" 인데, 이것이 1857년 최종판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chneewittchen und die sieben Zwerge)로 변경이 되어진다. 영어로는 [Snow White] 인데, 백설공주의 미모가 눈처럼 하얗고 앵두처럼 붉은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물론 동화속 가상의 이름이기는 하지만, 작품 속에서나마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눈처럼 하얗다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백설공주가 1937년 월트디즈니에서 만화영화로 제작하게 될 때에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다. 독일에서도 최종판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이 작품속의 인물대칭구조는 백설공주와 함께 지내던 일곱난쟁이의 상징성을 동일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겠다.
어릴적에는 이 백설공주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백설공주 옆에 난쟁이 일곱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서, 그냥 난쟁이들인 모양이다 라고만 생각을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해보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 백설공주 동화를 다시 접하게 되면서, 왜 하필이면 그림형제 작가는 백설공주에서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난쟁이 일곱을 등장시켰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깊게 생각해보면 백설공주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작품속의 등장인물로서 꾸며낼 수 있는것들 중에는 숲속의 남자요정도 있고, 숲속의 야수도 있고, 아니면 미녀와 야수처럼 못생겻지만 힘센 괴물같은 남자도 있을것이고, 또는 목동이나 양치기, 나뭇꾼, 사냥꾼등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정말 곰곰히 생각해볼만 의문이다. 왜 하필이면 난쟁이 일곱일까?
1937년에 월트디즈니에서 제작한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에서는, 난쟁이 일곱이 모두 늙은 할아버지뻘의 남자로서 묘사되어져 나온다. 아무래도 난쟁이라고 하지만 혈기왕성하고 젊은 나이의 난쟁이라고 하면, 어쩜 백설공주와의 묘한 외설적 상황이 연상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오해의 소지를 차단하려는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똑소리나게 건전한 어린이용 19금의 명작동화로 탄생을 시켜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백설공주라는, 하얀 눈처럼 아름다운 미녀를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스토리인만큼, 난쟁이 중에 여자가 있었다면 구도설정이 대칭적으로도 무언가 잘 안맞는 것 같으니, 남자 난쟁이로만 구성한 것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왜 하필이면 키작은 난쟁이가 일곱명이라는 구도로 대칭성을 형성시킨 것일까? 그리고 스토리의 마지막에서는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서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찐한 키스를 해주고 깨어나게끔 만들어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난쟁이들이 백설공주를 키스로 깨워준 아주 멋진 왕자님과는 전혀 다른 아주 못난 남자들이라는 대칭성이 또 하나 성립이 되어진다. 그래서 일곱 난쟁이들은 백설공주를 호위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멋진 왕자님이 나타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기만 하는 아주 못난 남자의 대표격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는 모름지기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해야 멋진 남자라는 식의 외모중심적 가치관은 변함이 없는 것이겠지만, 일곱명의 난쟁이를 남자이지만 키도 작고 볼품없는 외모의 못난놈들로 상징적인 묘사를 해서 대칭성을 형성시켜 놓아야만 백설공주를 단연 돋보이게끔 만들수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더구나 원작의 백설공주가 가지고 있던 외설적이고 끔찍한 스토리들을 수정하여, 어린이용으로 개작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다시 20세기 들어서는 각종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더 확실한 대칭성을 만들어서 어린이용으로 순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에, 난쟁이들을 늙은 할아버지의 모양으로 둔갑을 시킨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키작은 난쟁이이자 늙은 남자할아버지 일곱명이라는 것은, 백설공주라는 눈처럼 하얀 아름다움을 가진 아주 젊은 여자와 대칭적이지만 일곱명의 못난 남자의 대명사격인 키작은 난쟁이 할아버지들을 등장시킴으로서, 한 명의 미녀를 호위하는 일곱명의 못나고 하찮은 남자라는 균형성을 아주 적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지는 것이겠다.
그래서 역시나 백설공주가 등장하던 시절의 남성성에 대한 기준은, 현대시대와 동일하게 키가 큰 남자를 외모적으로 더 많이 동경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겠다. 못난남자의 기준은 역시나 키가 작은 것이 우선이 되어져 버린다는 것이기도 하다. ㅋㅋㅋ
그림형제가 백설공주를 처음 책으로 엮었을 때에,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백설공주의 원작은 지금시대에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어린이 명작동화속의 백설공주스토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원작 속 백설공주의 스토리는 오늘날의 우리가 읽기에 아주 불편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백설공주는 아버지인 왕과 근친상간을 일삼고, 숲 속에 버려진 뒤에는 일곱 난장이들과도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공주를 괴롭히고 죽이려는 왕비는 친어머니로, 백설공주가 잠든 유리관을 가지고 가는 왕자는 병적인 시체 애호가로 나온다고 한다.
원래는 백설공주가 난쟁이 일곱명과 함께 살면서 밤마다 난교를 즐기던 색녀로 나오는 것이지만, 어린이용 동화로 개작되어지면서 이러한 스토리는 모두 감춰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원작속의 일곱명 난쟁이라고 하더라도 백설공주와의 대칭성관계에 있어서는, 못나고 하찮은 수준낮은 남자들의 대표격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지고 키작은 난쟁이들이 설정이 되어서 나온다는 것은 현대식 백설공주의 스토리 속에서 드러나는 대칭성과 마찬가지 구도이다.
그만큼 키가 작은 남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못난남자의 대표격으로서 인식이 되어지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