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자 주간경향에 실려진 기사내용들 중에는, "만인과 만인이 싸운다, 각자도생의 한국사회" 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기사내용은, 남편과 아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큰집과 작은 집 등 명절때 마다 갈등이 분출되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 해명하기를, 능력주의와 경쟁주의가 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
기사 내용의 원문을 일부 인용해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분쟁을 겪는 비율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소속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발표된 OECD의 2017년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지난 1년간 사회생활 중 각종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34%로 조사대상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범죄에 따른 분쟁을 겪은 비율은 1%로 다른 회원국들보다 낮은 편이었지만, 특히 '사업과 고용' 문제와 '이웃 및 주거환경' 문제로 분쟁을 겪은 비율이 각각 10%, 6% 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아서 한국 사회의 가장 주된 일상적 갈등 요인으로 나타났다.
반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 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지를 묻는 응답에서는 전체의 75.9%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전체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4명 중 1명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이 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이 전혀 없다고 답한 셈이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한 듯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5.9점으로 역시 OECD에서 꼴찌였다. 또한 일년 기간중에서 이혼신청건수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시기는 명절연휴 직후라고 한다. 2017년 범죄실태보고서에 의하면, 일년 중 살인사건 및 폭행 사건 신고접수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 역시 명절 전후라고 하니, 이제는 한국에서의 명절은 가족간의 화기애애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한 명절이 아니라 살인절이라는 서글픈 누명을 씌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한국사회가 이렇게도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사회가 되어져 버렸을까? 이것이 단순히 '세대갈등' 이라는 측면으로만 해답을 강구할 수 있는 문제들일까? 어느 한 사회학 교수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끼리도 경쟁 또는 견제의 대상이 될 정도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갈등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만들어진 이유로 어릴 때부터 경쟁을 학습한 사회적 특성을 꼽는다. '세대갈등'으로 가려진 뒷면에는 자본과 노동간의 권력관계나 기득권층이 공고하게 쥐고 있는 정치권력 등 거시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일반 구성원들의 현실적 삶 속에서는 결국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라는 측면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무한경쟁이 일상화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입시경쟁, 취업경쟁, 퇴출의 공포에 따른 생존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고, 이것은 능력주의의 살벌한 전쟁터를 이뤄 각자도생이라는 능력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늘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한 가지를 더 밝혀볼 것이 있다. 한국사회의 짧은 기간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경쟁적 관계를 통해서 더 나은, 더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인재를 육성해내고, 이들을 통해서 국가의 발전이라는 거시적 목적을 달성해내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인재를 양성해내기 위해서 과열한 교육경쟁을 불러일으키는 것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실력경쟁의 전쟁터로 내몰린 결과, 현재의 젊은 층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더 많은 실력 더 뛰어난 배경 더 뛰어난 학력을 갖추기 위한 싸움의 부작용을 그들 스스로가 역으로 부닺치고 있는 것이다.
명절에 인천공항을 통해서 해외여행을 가려는 관광객들
이것을 일명 "지식인 사회의 역설"이라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있겠다. 과거 60년대 70년대에는 전국민들 모두가 자녀교육에 뜨거운 열정을 보였기 때문에, 지금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 모두에게 전세계에서 최고의 고학력 국가로 발돋움을 한 영광을 안겨다 주기는 하였지만, 그 뛰어난 학업욕과 지식욕 때문에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목을 옥죄는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온 것이다.
과거에는 전반적으로 학력수준이 낮고 무식했다. 그래서 무식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생각이 짧고 판단능력이 약해서 시키는 자의 말대로 고분고분히 잘 따랐다. 그래서 과거시대에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권위가 당연하게 인정받으면서 여자는 공부안해도 되고 무식해도 집안살림만 잘 하면 되는 시대였다. 그러니 나이가 어리거나 여자이면, 당연히 나이많은 윗어른에게나 남자에게 고분고분하면서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으면 그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인정받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합리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싸가지 없는 짓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너도 나도 대학을 나오고, 대부분이 고학력자이고 지식수준이 과거세대에 비해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머리가 커져버린 지금의 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모두가 많이 배우고 모두가 똑똑하고 모두가 아는 것이 많은 시대에는, 어떤 한가지 가치관에 혹은 어떤 일방적인 권위에 끌려가지를 않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이자, 흔하게 듣고 있는 극명한 '세대차이'의 특성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식인 사회의 역설" 로서 설명이 가능한 측면은, 같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모두가 지식수준이 충만하고 아는 것들이 많고, 거기에 더하여 모두가 각자의 선호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밀성을 가지는 것은 비슷한 취향, 비숫한 지적수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가능할 뿐이지, 다양한 지식적 차이와 분야의 다양성 때문에 모든 관계에서 원만한 친밀성을 기대하기는 극히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이다.
한 마디로 모두가 잘났고 모두가 많이 배웠고 모두가 똑똑하기 때문에, 함부로 남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수준높은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지식인 사회의 역설"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늘날의 각자도생을 꿈꿔야하는 지금의 시대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있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지식인 사회에서의 "지식" 으로는 해결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갈등과 분쟁의 첨예한 사회적 골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다양하고 수많은 지식의 내용들과 수준을 거시적으로 통찰하고 융합시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진리의 등장"이 가능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과 진리는 분명히 다르다. 지식은 하나의 논리와 이론이 등장하여 그것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하나의 지식이 되고, 이것이 널리 통용되어지면서 상식으로 변화되는 것이지만, 진리라는 것은 상식이라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인간이 속해져 있는 자연의 법칙과 결부된 법칙을 진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이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우주와 지구와 자연의 당연한 법칙, 그 법칙에 맞추어서 어떻게 인간의 문화와 사회와 도덕이 새롭게 정립되어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지금은 그 새로운 진리의 도출이 이루어져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미지를 그려주신 tata1님과 surfergold 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