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87. 마음의 울림이 있는 문화와 마음의 울림이 없는 문화

yangmok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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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 홀에서 진행되었던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을 보고서 어떠했냐고  소감을 묻는다면 일언지하에 답을 할 것이다. "전혀 마음의 울림과 감동이 없다" 라고 말이다. 

물론 직접 현장에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유튜브 동영상으로 공연전체를 보고 있고라니, 딱딱하고 경직되고 억지로 짜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분명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현재 한국에서 평균시청률 10%초반대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 늙은 시청자들을 위한 가요무대와  젊은세대들을 위한 케이팝과 감각적인 무대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 차이점이 확연하게 느껴지게 된다. 

문화예술의 그 진귀한 값어치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 표정과 몸짓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보고듣는 사람에게 마음으로의 공감과 울림이 전달되어져 올 때에  뛰어난 값어치를 매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을 대표한다는 최고의 예술단이 보여준 것은,  흥겨움도 신명남도 공감의 느낌도 없이 그냥 푸석푸석하고 맛고 향도 없는 빵 한 덩어리를 던져주는 것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사실상 그럴만도 한 것이 북한에서의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체제선전을 위한 홍보와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수들의 표정과 동작들은 딱딱하고 어설프고 경직되어져 있는 느낌을 줄 수 밖에 없음을 충분히 해아리고도 남는다.  수 십년동안 폐쇄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고수해 온 결과가 그러하니, 그 내부의 사회체제 역시 그만큼 딱딱하고 경직되고 틀에 박힌 듯한 어설픔이 드러날 수 밖에, 또한 그 사람들 역시도 심성이 그렇게 딱딱하고 경직되어져 있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넓게 생각을 해보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가두고 폐쇄적으로 억압을 하면, 다양성이 섞여들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굳어져 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올바른 것이라는 사고관념은 스스로를 딱딱하게 굳어지게끔 만들어버린다. 이것저것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스스로가  더 나은 존재가 되어져 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 그것이 시간이 갈수록 부드러움으로 표현되어져 나타나는 것이고  더 크게 발전되면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울림으로서 전달하게 되는 수준이 된다. 

그러고 보면  현재 우리의 한국사회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과 방송연예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다양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경쟁을 하면서 노력을 해 왔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위대한 한류문화열풍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준높은 울림과 감동의 전달이 가능한 문화예술로의 성장과 발전은,  지금 우리사회의 감성적 지성적 부드러움을 더욱 더 중요시하는 시대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익으면 익을수록 내면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욱 더 부드러워져서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문화적 소양이 깊으면 깊을수록에  타인의 작품을 비평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알고,  더 새롭게 만들어지는 작품들 속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어갈 수 있는 더 강한 부드러운 울림의 힘이 자꾸자꾸 생겨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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