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fashion)이라는 단어를 듣게되면 떠오르는 연상어구들이 세련된, 현대풍의, 도도한 ,여성들이 주도하는, 기발하고 독특한 감성, 그 시대의 트랜드 형성 등등의 것들이다. 이것은 사회적 계급으로 분류한다면, 최소한 중산층이상의 계층에 해당되는 문화적 코드인 것이지, 서민층의 것들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하겠다. 특히 유명인기인들과 연예인들 그룹은 어떻게 패션감각을 과시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몸 값이 좌지우지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패션분야에서 잡지 화보 촬영등의 관련 직종에 종사를 한다고 하면, 아주 세련된 고급직종에 종사하는 뛰어난 엘리트로서 분류를 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감각적인 측면은 새로운 유행에 아주 민감하고 또한 이들 스스로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대중들의 시선을 잡기도 하고 또 반대로는 대중들에게 문화트렌드를 전파해주기도 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패션의 어원은 라틴어의 팍티오이며, 만드는 일 ·행위 ·활동 등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가 된다. 그러나 패션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통용되어진 것은, 유럽지역에서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었던 유행과 매너, 그리고 폭넓은 생활풍습에 관해서 일컫는 것으로 재정립되어지면서, 프랑스에서는 동의어로서 '모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니, 단순히 옷차림하나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복식(服飾)유행을 중심으로 하여 그 외의 복합적인 여러 문화적 요소와 유행적인 관습까지도 총망라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시대에는 패션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hot 한 하나의 아이템이다보니, 패션업계 전문가들끼리도 새로운 유행어를 창출해내기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것이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똑 같은 옷을 입혀놓아도 얼굴을 가리고 있을때와 얼굴을 노출하고 있을때의 사람들 반응은 전혀 다르다고 하니, 과연 패션은 멋진 옷차림과 악세사리등의 꾸미는 것들만 가지고는 정의가 되어지지 못하는 것인 모양이다. 그래서 패션쇼에서 활약하는 모델선별과정에서는 몸매와 얼굴형과 얼굴의 날카로움 정도로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느낌을 가지고 판단하여 어떤 옷을 걸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패션업계관계자들끼리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면, 모델 선별과정이 아주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는 방증이라고 할 것이다.
굳이 실험적으로 화려한 패션을 걸치고 있는 유명모델의 얼굴을 가리고서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더라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아주 다양하게 많다. 예를 들어서, 배우 이정재가 남루한 아버지뻘 시대의 잠바를 하나 걸치고서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잠바가 순식간에 인기를 얻으면서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왜냐하면 영화배우 이정재의 얼굴과 체형에 걸쳐진 그 옷이 너무 멋잇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인데, 사실은 그 옷이 너무 멋진 것이 아니라 이정재의 얼굴과 체형과 행동거지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 옷까지도 아주 멋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영화 '의형제' 가 상영되었을 때에, 배우 강동원의 후즐근한 패션은 정말이지 아무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아니었다. 하지만 극중에서 버려진 남파공작원이라는 역할 때문에, 촌스럽기 그지없는 옷을 입고 출연을 했지만 이 영화를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강동원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명연예인들의 패션화보에서는 더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얼굴과 몸매가 조각같이 미남이고 미녀인 경우에는 아무리 볼품없고 촌스러운 옷을 걸쳐놓아도,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고 예쁘게만 보이는 기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명 한국에서는 이 현상을 두고서 유행하는 말이, "옷은 좋은데 옷걸이가 영 신통치 않다" 혹은 "옷걸이는 아주 좋은데 옷은 볼게 없다" 라는 비유적인 농담으로서 풀어내고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이없지 않는가? 하루 24시간동안 쉬지않고 틀어대고 있는 대한민국의 케이블 방송 홈쇼핑매장에서는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늘씬하고 체격좋고, 얼굴은 인형같이 예쁘고 조각같은 모델들이 등장해서 신상품 패션쇼를 하면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결국은 이 패션쇼를 보고서 구매의사를 밝히는 사람들 역시 " 저 옷은 나에게 잘 맞을까? 안 맞을까? "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결국에는 눈앞에 보여지고 있는 화려한 전문모델의 이미지가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구매버튼을 누르고 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체형이 다르고, 체격이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그러한 측면에 맞추어서 다양한 패션의 분야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상호존중하려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나만의 패션과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대중들은 화려한 조각같은 극소수의 모델들이 과시하고 있는 패셔너블한 자태를 자신과 동일하다고 투영시키면서 구매욕구를 드러낼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히 나의 얼굴은 영화배우의 얼굴이 아니고, 드라마속 인형같이 예쁘장한 여배우의 얼굴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입고 있는 패션유행을 나에게 적용시키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것일까? 물론 그 와중에는 패션업계가 주도하는 상업주의적 소비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여러가지 판매전략과 광고 전략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에 소비자들은 마음을 빼앗기게끔 되어져 있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안맞는 것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꼴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패션산업계를 주도한다는 이들이 유행어처럼 만들어 낸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말은, 진실성에는 한 템포 미치지 못하는 덜 떨어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말은, 결국에는 배우들처럼 연예계인기인들처럼 예쁘고 잘생기고 봐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인데, 그렇다면 형편없고 볼품없는 외모의 소유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극소수의 선택받은 미모의 소유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패셔너블한 삶인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자기만족이자 자기맞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만 잘 어울릴 수 있는, 자신의 얼굴과 체형에 가장 잘 맞는 패션을 제대로 알고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돈없고 여유없고 패션이고 뭐고 일일이 신경쓰면서 살 만한 형편이 안되다보니 그냥 보이는 대로 닥치는대로 걸치고 다니는 것이지만, 오늘날 패션업계의 꼴불견적인 상업주의 광고 행태는 가면 갈수록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돈 많고 잘사는 상류층들을 위한 패션쇼의 화려함이라고 한다면, 그들끼리의 문화만으로 공유되기를 바랄뿐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이 말을 만들어 낸 것은, 패션업계의 화려하지만 속좁은 그들만의 리그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자가당착적으로 만들어낸 자기모순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